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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rbusier_ 르 코르뷔지에의 인생을 돌아보는 건축 답사-3

침묵과 환희의 공간 속으로 떠나는 여정, 작은 궁전이며 인생의 본질을 만날 수 있는 크기

등록일 2019년10월24일 12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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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rbusier_ 르 코르뷔지에의 인생을 돌아보는 건축 답사-3

침묵과 환희의 공간 속으로 떠나는 여정,

작은 궁전이며 인생의 본질을 만날 수 있는 크기…

 

 

 

 

 

 

 

“슬퍼하지 말게 언젠가 우린 또 다시 만나게 되는 거니까.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출구와도 같다네.”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신비로운 침묵과 환희의 공간,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최고의 종교건축 걸작으로 손꼽히는 생 마리 드 라 투레트 수도원(Sainte Marie de La Tourette, 1959)은 세월의 낡은 켜를 안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로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 수도원은 사랑의 작품이다. 겉으로 뽐내지 않으며 그 생명은 내부로부터 기인한 것이다”고 밝힌 르 코르뷔지에의 겸허한 말처럼 이 건물은 형태와 입체, 색채와 음영, 춤을 추듯 떨리고 울림으로 가득 찬 공간의 아우라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르 코르뷔지에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설계하면서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르 토로네 수도원의 회랑과 중정의 공간미를 적극적으로 건축에 도입하고자 했다. 내부는 직각을 기반으로 한 기하학적 입면 구성을 엿볼 수 있고 발코니가 딸린 수도사의 독실, 콘크리트와 유리를 사용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평과 수직의 묘미로 넘쳐나는 입면의 독창성, 벽과 천장의 적재적소에 뚫린 개구부를 활용해 유입되는 예배당의 은은한 빛의 선율, 본당으로 향하는 겸허한 빛과 어둠의 공간, 부속성당의 신비로운 빛의 유입, 직선과 대비되며 볼륨감을 강조한 기능적인 공간과 조형미의 관계성, 주변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상정원 등은 라 투레트 수도원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독창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 리옹 인근의 작은 마을 피르미니에 완성한 유일한 건축물인 피르미니 문화센터(Maison de la Culture, Firminy, 1953)는 1961년부터 1965년 사이에 지어졌다. 운동장과 스타디움, 문화센터와 성당, 주거시설 등의 피르미니 종합계획에서 출발했듯 경기장 관람석으로 사용하기 위해 계획한 피르미니 문화센터(길이 112m, 폭 14m)는 132개의 케이블과 10cm의 콘크리트 슬래브 시스템으로 연결된 뒤집힌 아치 모양의 지붕과 중계 좌석을 설치한 기울어진 서측 파사드, 3개 층을 포함한 16칸의 실 등이 특별하다. 동측과 서측 외관을 따라 형성한 물결 형태의 유리 패널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루마니아 출생의 그리스 작곡가 아안니스 크세나키스(1922~2001)가 공동으로 작업한 것으로 건축과 음악의 조화로움이 신선한다. 건물 내의 가구 역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한 피에르 귀아리쉬(1926~1995)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귀아리쉬는 르 코르뷔지에가 도입한 모듈러 시스템을 사용해 인체 비례에 조화된 가구를 구현해 내었다. 현재 문화센터는 공연예술의 창작 공간, 지역 음악학교와 회의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피르미니 스타디움(1968)을 가로질러 맞은편에는 피르미니 성당(2006), 수영장(1971)이 자리한다. 피르미니 성당(Saint-Pierre, 2006)은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미완의 건축 작품으로 그의 사후인 2006년에 지어졌다. 교회건축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끝이 잘린 원추 모양의 예배당은 계곡의 절벽과 산맥의 흐름을 활용해 독특한 경사면을 자랑한다. 특히 제단의 벽면이 되는 동측 면에는 오리온성좌를 상징하는 구멍이 뚫려 있어 성당 내부로 전율하는 빛의 유려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흡사 말씀의 울림이 공간에 춤을 추듯,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는 듯한 빛의 물결은 시간에 따라 묘한 연속된 흐름을 연출하며 방문객을 황홀감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다이내믹한 레벨감 부여하는 저층부는 전시장으로 활용되며 르 코르뷔지에의 여러 작품을 학습하듯 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택의 수요는 전례 없이 늘어나고 있던 시점, 르 코르뷔지에는 마르세유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Marseille, 1952)을 통해 폭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 주민들이 쇼핑하고, 놀고,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 주택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18층 높이(61)에 길이 137m, 너비 20m의 거대한 수직 도시는 마치 증기선을 닮은 듯한 볼륨감으로 마르세유 바다를 유영하는 듯하다. 건물 자체는 기능적으로 최적화된 도시 내의 도시성을 추구하지만 애초 저소득층의 주택으로 계획되었다. 이 대규모 콘크리트 건물의 저층은 바닥을 8m 높이로 띄워 지면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내부는 주거와 상업 시설을 절묘하게 엮어 놓았고, 타워사이에는 놀이터, 지붕 정원, 벤치, 수영장을, 옥상 층에는 유치원과 체육관, 소극장 등을 조성해 놓았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주거 단위의 공간적 구성이다. 복도를 3층 마다 하나씩 배치하고 2층 높이의 유닛으로 주거 공간의 연동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다. 각 유닛의 끝 지점에는 브리지 솔레이유가 설치된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어 복층형 내부 공간 전체에 시원스럽게 통풍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파격적이고 신선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일각에서는 정신병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모더니즘 주택건설의 혁신적인 시초이자 오늘날 아파트 시대 확장을 견인할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답사단은 고흐가 사랑한 마을 아를을 잠시 쉼표를 찍었다. 강렬한 햇살이 비추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주의 작은 마을 아를에서 고흐는 2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아를 병원의 정원’의 소재가 된 곳에서는 알록달록한 꽃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고, ‘밤의 카페 테라스’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던 낭만적인 카페는 과거로의 예술적 향취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아를은 론강 하류 좌안에 위치하며,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로마시대에는 바다로 통하는 석호와 면해 운하로 해안과 연결돼 론강과 지중해를 항행하는 선박들로 넘쳐났다. 원형 경기장과 고대 극장의 잔재가 남아있고, 중세시대의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생 트로핌 성당과 시청사,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골목길의 정취는 아를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마르세유에서 찾은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MuCEM)은 17세기 군사용 요새로 축조되었다가 프랑스혁명 이후 감옥으로 사용되던 옛 성을 리노베이션한 곳이다. 지중해를 배경을 들어선 요새의 성벽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통로와 그물 모양의 현대적인 구조물을 입힌 건물은 박물관과 성채 관람, 포트로 이어지며 과거와 현대의 중첩화된 시간 여행을 하게 만든다. 프랑스 건축가 뤼디 리시오티(Rudy Ricciotti)가 설계한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은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벽과 지붕의 그물형 틈새로 내부로 끌어들이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흠뻑 매료시킨다. 내부 공간은 박물관과 갤러리를 서로 절묘하게 융합했고, 상부 테라스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도 묘미가 있다.

 


 

 

“나는 리비에라에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것은 단지 3.66m에 3.66m의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것은 내 아내를 위한 것이며, 굉장히 편하고 안락합니다.” 그의 아내 이본느를 위해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프랑스 남부 로크 보룬 카프 마르탱의 카바농(The Cabanon, Roquebrune-Cap-Martin, 1951)은 4평짜리 소박하기 그지없는 통나무집이었다. 그 자신이 설계한 수도원의 수도사의 방(축소된 살아있는 셀 Cell)의 유형인 이곳을 르 코르뷔지에는 생전에 작은 궁전이며 인생의 본질을 만날 수 있는 크기라고 강조했다. 그가 머물던 오두막은 식당 불가사리 집(The Etoile de Mer)과 곧바로 연결되기에 오두막에는 식당이 따로 없다. 카바농 내부는 떡갈나무와 밤나무로 만든 가구와 파티션을 사용했고, 2개의 정사각형 창문은 지중해와 오래된 캐롭나무를 향하고 있다. 오두막 아래는 유명 가구디자이너이자 여성 건축가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1878~1976)가 자신의 애인이자 건축잡지 편집장이었던 장 바도비치(Jean Badovici)와 여름휴가를 위해 지은 ‘E-1027’이 다소곳이 자리한다. 집 이름은 아일린 그레이와 장 바도비치의 알파벳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최소한의 장소에 쾌적한 생활을 기반으로 지어진 ‘E-1027’의 주거 개념과 편안한 가구 디자인은 단숨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평소 바도비치와 교류를 가졌던 르 코르뷔지에는 부인과 며칠 ‘E-1027’ 주택에 머물렀고 주택에 매료돼 무단으로 벽면 한쪽에 벽화를 그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레이와 사이가 나빠졌고 추후 이 집은 경매를 거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그 즈음 르 코르뷔지에는 ‘E-1027’ 집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 옆에 겸손하게 지어진 작업실에서는 지중해의 풍경이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온다.

 


 

 

“슬퍼하지 말게 언젠가 우린 또 다시 만나게 되는 거니까.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출구와도 같다네. 나는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 불행해하는지 모르겠네. 그것은 수직에 대한 수평일세, 보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지.”

1965년 8월 27일, 따사로운 햇살이 작열하는 지중해의 풍경을 바라보며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작업실을 나와 푸른 지중해에 몸을 담갔다. 주치의가 평소에 심장이 약하니 절대 수영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그가 죽기 8년 전에 사망한 아내 이본느의 곁을 지키고자 프랑스의 로크 브룬 카프 마르텡에서 78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것이다. 코르뷔지에의 사망 후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작고 소박한 묘지에 먼저 간 아내 이본느와 합장되었다.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건축가이자, 시대를 넘어서 현대건축의 발전에 선구자적인 굵직한 입지를 남긴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수많은 건축 언어는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가 그토록 구현하고자 한 인간을 위한 건축 정신과 햇빛, 나무, 공기를 우리 삶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고자 했기에 르 코르뷔지에가 구현해 놓은 건축물을 돌아보는 10일간의 여정은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남는다.

 

안정원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김용삼 편집국장

전승용 아키투어 대표, 자료/사진_ ANN, 아키투어

 


 

이영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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