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화가의 그림으로 엿보는 제주의 ‘삶’
민중의 삶과 애환이 담긴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해녀 옥순, 177×227cm, 장지에 아크릴, 2020>
인사아트센터는 제주를 대표하는 작가 이명복 화백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역사는 기록되어야만 역사로 남는다, 기록이 없는 역사는 잊히고 만다. 이명복은 그림을 통해 공동체의 시대정신과 정서를 끊임없이 전파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이명복은 ‘역사와 현실’ 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작가는 극사실주의 묘법으로 민중의 의식을 담아냄으로써 당시 시대상을 어떠한 이념으로 작품에 녹여내려고 했는지 엿볼 수 있다.
1990년대에는 미군이 상륙한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점차 몰락해가는 시골풍경을 주로 그려왔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권력의 지배성을 작품에 담아 전달하고자 하였다. 광부, 뱃사공, 농민들을 주로 다룬 인물 연작은 치밀하면서도 세밀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들의 고된 삶을 표현하였다. 2010년에 제주로 입도한 작가의 작품에는 해녀와 밭일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작가가 직접 만난 사람들로, 작가의 독창적인 안목이 찰나의 순간을 실감나며 감동적이게 표현하였다. 또한 수면아래 감춰진 제주의 과거를 캔버스에 흡수시켜 당시 참혹한 현장을 재차 들어내었다.
<봄, 177x227cm, 장지에 아크릴, 2020>
제주에 입도한 2010년은 이명복의 작품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제주에서 3년간의 적응기를 거친 이후 해녀들의 인물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제주 해녀 문화는 제주도민의 정체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작은 부표 하나에 의지하여 거친 바다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해녀의 이미지는 제주도민의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한편 특별히 지정된 일부 바다에서 공동 작업을 해서 얻은 이익으로 공동체 사업의 재원을 마련하는 등 제주도민의 정신을 대표하는 ‘제주 해녀 문화’는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하며, 해녀와 그 공동체가 가진 연대와 조화의 정신을 증명한다. 작가가 ‘어쩌면 신적인 존재’ 라고 느끼는 해녀를 담은 인물화는 얼굴 주름에 담긴 세월의 흔적을 이겨낸 우리네의 어머니와 같은 숭고함이 담긴 눈빛을 찾아 낼 수 있다.
<4월의 숲, 164x26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현재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제주 관광 명소 마다 과거엔 가슴 아픈 장소였다. 이명복은 극사실주의의 풍경화로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담아 참담한 현실을 외면했던 현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예술 평론가 고영자는 화가 이명복에 대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시각적인 조형언어로 번역해 전파하는 무언(無言)의 이야기꾼’ 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그려내 비판한 1900년도 작품과는 달리, 이명복은 제주의 풍경을 아름답게, 때로는 쓸쓸하게 담아냈다.
이명복의 풍경화에선 자연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단색의 컬러를 사용하여 깊고 풍부한 명암 표현 방법을 선보인다. 폭이 3m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작가의 작품에선 긴장감뿐만 아니라 작품 속 장소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광란의 기억, 363x227cm, 캔버스에 아크릴, 2018>
이번 전시는 이명복의 제주생활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먼저 본 전시장에는 작가의 신작 흑백톤 대형 인물화인 해녀 연작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이명복은 일상 속 대상에서 의미와 감동을 발견하고 이를 조형적인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을 중요한 지점으로 삼고 있다. 한편 제 2 전시장에서는 적색과 녹색, 그리고 청색의 제주 풍경화를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녹색의 ‘4월의 숲’은 숲 시리즈의 연작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이명복의 신작 및 인물 시리즈와 풍경화 등 22점을 선보이며, 민중의 삶과 애환이 담긴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ANN
자료_인사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