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과 이상주의자들과의 만남,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어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협력한 전시가 오는 2017년 2월 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기획전은 간송컬렉션의 작품들과 함께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28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조선 중기화단의 대가 연담 김명국과 조선 남종화의 대가 현재 심사정의 대표작들과 함께 기이하고 독특한 품행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의 호생관 최북의 산수화 및 인물화 그리고 조선 말의 대표적 화원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 역시 1950년대 독일 플럭서스 활동기의 자료들로부터 1960년대의 기념비적 퍼포먼스 영상인 <머리를 위한 선>, 1970년대의 대표작인 와 를 비롯해 1980년대 이후 시기의 대표적 설치 작품인 <비디오 샹들리에 1번>, <코끼리 마차>, <달에 사는 토끼>, 도 놓칠 수 없는 명작들을 선보인다.
복록과 수명, 그리고 부귀의 상징.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와 백남준의 설치 자품 <비디오 샹들리에 1번>
최북의 <관수삼매, 물을 보며 삼매에 들다>와 백남준의 깨달음에 대하여.
전시는 단순히 좋은 작품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들의 연관성에 깊은 의미를 두어 작품 간에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은 기명절지도가 아시아 문화권에서 통상적으로 ‘길상’의 의미를 담듯이, 서구문명에서의 샹들리에는 ‘부유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유함을 의미하는 샹들리에에 대중의 일상을 보여주는 TV를 배치함으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복(福)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함께 전시된 장승업의 <오동폐월>과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 역시 특별하다. 장승업의 작품에는 봉황이 앉는다는 오동나무 밑 둥치에서 노란 국화가 피며 개는 달을 향해 짖고, 백남준의 나무로 조각한 토끼는 TV 화면 속의 달을 응시한다. 달과 동물이라는 아주 흔하지만 특별한 소재가 함께 만난 것이 재미있고 우리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봉황과 달에 사는 토끼를 통해 달이라는 소재가 주는 상상력의 자극한다. 심사정의 대표작 <촉잔도권>과 백남준의 대표작 <코끼리 마차>의 연결도 볼만하다. <촉잔도권>은 촉(蜀) 지역으로 가는 힘든 여정을 말년에 심사정이 그린 그림으로, 굽이굽이 험준한 산길과 일렁이는 물길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다.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는 인간의 정보와 교류가 고되고 직접적인 물리적 이동으로부터 정보통신처럼 빠르고 간편한 이동으로 발전해온 장구한 인류사의 발달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사람과 사람의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이상적이면서 낙관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VR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인 <보화각>은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다. 보물을 모아둔 집이란 뜻의 보화각(葆華閣)은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구범석 작가는 보화각이라는 실재하지만 가볼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도록 보화각 VR영상을 색다르게 기획하였다.
세 사람. 최북의 <호계삼소, 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 백남준의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
이상향을 찾아가는 두 가지 방법. 심사정의 국보급 대형 두루마리 그림인 <촉잔도권>과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
전시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는 공통적으로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포인트이다. 연담 김명국은 불교의 선과 도교의 신선사상으로 이상향을 꿈꾸었으며, 현재 심사정은 몽환적인 남종 산수로 이상향을 그렸다. 호생관 최북은 그의 호가 ‘붓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유유자적하고 은일한 선비의 이상향을 사랑했고, 오원 장승업은 도석인물화를 통해 인간의 무병장수·부귀영화·입신양명과 같은 세속적 가치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현세를 초월한 신선의 삶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와 견주어 백남준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예술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동서양 문명이 서로 통하여 인류문명 자체가 어우러져 발전되길 희망한 이상주의자였음은 자명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달.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와 장승업의 <오동폐월, 오동나무 아래에서 개가 달보고 짖다>
파격과 일탈. 백남준의 <머리를 위한 선>과 김명국의 <수로예구, 수노인이 거북을 끌다>
이렇듯 전시는 파격적인 형식과 새로움으로 현대미술계를 장식한 백남준 역시 한국성과 동양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작가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송 전형필 선생 역시 암울한 비극의 시기에 오롯이 우리 문화를 지켜낸 분으로 우리 문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 두 인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네 명의 조선시대 화가들과 백남준은 공통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과 이상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공통된 염원이었다.
<보화각>, 구범석
정치적 혼돈으로 인해 사뭇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옛 사람들은 낙천적인 세계관을 잃지 않았다. 백남준 역시 정보통신과 매스 미디어, 과학의 엄밀성과 예술의 창조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보다 살기 좋은 인류의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술, 즉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만남을 통해 이번 전시는 한층 밝은 예술의 숨결을 음미하면서 현실을 좀 더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박시은 기자
참여 작가_ 간송미술문화재단/ 연담 김명국 · 현재 심사정 ·
호생관 최북 · 오원 장승업,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자료_ 간송미술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D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