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orbusier_ 르 코르뷔지에와 France
와! 뜨겁다. 발등은 화상으로 쓰라리다.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유럽 대륙 전체가 가마솥처럼 끓어오른 7월 말에 나는 프랑스의 도시 한가운데에 있었다. 정말이지 타는 듯한 대지와 작열하는 햇볕은 숱하게 여름철 유럽을 다녀봤지만 이제껏 프랑스에서 겪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튀김더위였다. 하지만 심각한 더위를 무릅쓰고 유럽 대륙의 서쪽 지역, 지중해와 대서양과 마주한 프랑스에서 보낸 9일 일정은 울림의 연속이었다. 근대건축의 대표 건축거장으로 손꼽히는 르 코르뷔지에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아보고, 그가 평생 구현해낸 주옥같은 건축물을 둘러본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여정의 피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낡은 건축책을 넘기듯 차분히 시작한 코르뷔지에 건축과의 만남은 파리 외곽의 빌라 사보아를 비롯해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 아파트, 16구의 동네 끝자락에 위치한 빌라 라 로슈, 파리 국제대학 캠퍼스 내에 지어진 스위스 파빌리온과 메종 드 브라질, 가난한 사람을 위한 최초의 숙박 시설인 구세군회관, 프랑스 동부 롱샹마을 언덕에 들어선 20세기 최고의 건축물인 롱샹 성당을 둘러보았다. 건축답사단은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작인 스위스 라쇼드퐁의 빌라 팔레, 빌라 자크메트, 빌라 스토처와 메종 블랑쉬, 빌라 스왑, 스위스 작은 집도 둘러보는 기회도 마련했다. 이어진 르코르뷔지에 건축답사는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신비로운 침묵과 환희의 공간,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최고의 종교건축 걸작으로 손꼽히는 생 마리 드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한껏 고조되었다. 수도원으로 진입하는 길의 언덕 한 자락에서 무심한 듯 서있는 건물은 존재 자체가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회랑과 기하학적 입면 구성, 비어있는 듯 하지만 밀도 높은 볼륨감의 매스, 색채와 음영으로 빚어낸 입체감 있는 공간미, 어둡고 겸허한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빛의 유입 등은 라 투레트 수도원이 어떻게 수많은 건축가들의 마음을 울리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살아생전 완성한 피르미니 문화센터와 건축가 사후 완성된 운동장과 스타디움, 문화센터와 성당, 주거시설 등도 둘러보아 감회가 새로웠다.
르 코르뷔지에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프로젝트는 단연코 마르세유 유니테 다비타시옹도 손꼽을 만하다. 18층 높이에 길이 137m, 너비 20m의 거대한 수직 도시 내에는 주거 공간과 체육관, 소극장, 유치원, 놀이터, 지붕 정원 등을 갖추어 현재의 아파트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 시각으로 본다면 그다지 높지 않거나 좁은 내부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택의 수요는 전례 없이 늘어나고 있던 시점에서는 가히 혁신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답사 도중에 들린 파리, 바젤, 베일 암 라인, 베른, 리옹, 로잔, 마르세유, 아를, 니스 등의 도시 곳곳의 골목길과 저녁 11시가 넘도록 해가지지 않는 파리의 백야로 센강변을 거닐며 여유로운 시간도 내겐 특별했다. 특히 고흐가 사랑한 마을이었던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아를에서의 잠깐의 휴식은 정말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예술적 향취에 매료되고, 마을 골목길에 이내 빠져들어 과거로의 판타지 여행을 하는 듯 공중 왈츠의 발걸음으로 다녔다. 마지막 여정지인 프랑스 남부 로크 보룬 카프 마르탱의 4평짜리 카바농과 작고 소박한 무덤은 위대한 건축가의 말년 삶과 죽음의 애잔함을 오랫동안 되새기게 만든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여전히 호흡하고 사유하며 긴 생명력을 가진다.
비비안 안 발행인 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