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호의 주거문화 논단 연재>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1
아파트, 우리 주거문화의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다
아파트(Apartment Building)는 우리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거 형태의 날 것 같은 현주소이다. 라틴어로 ‘분리’라는 뜻에서 유래한 아파트는 정해진 도시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건축 구조로 기원전 1세기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목재와 진흙 벽돌을 활용해서 지은 고밀집 다세대 주택의 출발은 로마시대의 고밀집 다세대주택인 인술라이(insulae)에서 시작했고, 18세기 산업혁명과 인구밀도의 증가에 따른 도시 성장의 변화에 맞추어 공동주거의 새로운 전형으로 떠올랐다. 인클로저운동으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도시 노동자들을 위한 집합주택이 대두하기 시작했고, 이후 엘리베이터와 철근콘크리트구조, 철골구조 등 건축 기술의 성장에 따라 급격한 질적 양적 변화를 이어가며, 현대식 주거 문화의 대명사로 세계의 도시 곳곳을 속속들이 점령하고 있다. 최근에는 IoT(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술을 도입한 4세대 스마트형 홈 아파트로 4차 산업을 선도하며 미래형 공동 주거문화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는 auri 지식총서인 최두호+한기정 공저 ‘아파트를 새롭게 디자인하라’의 내용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40여 년 간 우리나라 주거 형태의 대표 공동주택 주자로 자리매김한 아파트를 소규모 단지부터 도시 규모의 대규모 단지에 이르기까지, 계획과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직·간접적인 주거단지 설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얻어진 전문적인 지식과 사내에서 하우징에 대한 관심이 많은 직원들과 ‘한국적 주거단지 연구회’라는 팀을 구성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본 논단은 이러한 연구 내용들을 근간으로 해, 우리가 숙명처럼 살아가야 할 아파트라는 주거 현황을 찬찬히 곱씹어보고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과 형태, 건축물로 형성하는 외부 공간, 아파트 단지와 도시 공간, 층수, 밀도가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제도적 요인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그 추세는 지방 소도시이든, 농어촌 지역이든, 대도시에 있든지를 불문하고 똑같은 형식과 형태의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적 주거단지 연구회’는 그동안 아파트를 주거 문화의 산물로 간주하고, 그 안에 담긴 삶의 모습에 대해 논의하고 이야기되는 매체가 있었던가를 질문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전 가구의 59.9(2015)%를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아니면 인터넷에서 아파트를 검색해 봐도 거의 대부분의 매체가 다루고 있는 것은 아파트가 삶의 장소가 아닌 재화로서 다루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에 아파트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발간된 잡지에 ‘아파트먼트’란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해방 이후 1952년에 정부는 주택 정책의 기본 자료를 구축하고자 ‘시세 열람’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에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이 설정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아파트를 공동주택의 한 유형으로 인정한 것은 1958년 종암아파트라고 보기도 하지만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62년에서 1964년에 완공한 6층, 642세대 규모의 마포아파트를 꼽을 수 있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식은 도시공간과 도시민의 삶속에 급속하게 파고들어 낯설고 두려운 생활공간이 아니라, 편리한 주거 형태로 인식했다. 아파트의 공급과 확산은 좁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경제적 이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상징적 의미도 지니고 있던 셈이다.
마포아파트 단지 전경 © LH
마포아파트 단지는 당초 엘리베이터, 중앙난방 시스템 및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춘 1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로 구상했다. 하지만 당시의 여론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개별 난방시스템의 6층 계단식 아파트로 변경하여 추진했다. 마포아파트 단지는 Y형 주거동 A, B 타입을 3동씩 1차(1962)로 배치했으며, 2차(1964)에서는 4개의 일자형 주거동을 추가적으로 배치했다. 즉 단지 내에 배치된 10개의 주거동은 3종류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포아파트 단지에서 Y자형 주거동을 사용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코어의 집약화가 가능하고 외형적인 형태도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채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포아파트 단지 배치도 © LH
최초의 단지에서 주거동을 반복하여 배치한 이유는 두 가지 차원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1차 계획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로서 아파트 단지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상징성이 큰 것이었다. 그러한 상징성을 얻어내려는 의도에서 Y자형을 반복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그 당시에도 이미 도시에서의 토지 이용 효율화 등 경제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주거동을 반복하여 배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설계 노력의 경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마포아파트 Y형 주동 평면도 © 최두호
마포아파트는 일반인에게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을 새롭게 인식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도시 교외로 무질서하게 확산하던 단독주택의 건설을 지양하고 넓은 대지에 주거를 고층화함으로써 공공시설을 배치했다. 평면에 있어서는 입식 생활을 지향함으로써 한국의 집합주거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계획적 측면에서 볼 때 마포아파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더욱 연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 아파트를 유럽식의 ‘Tower in the Park’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초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했던 ‘Tower in the Park’ 개념은 동일한 부지에 동일한 밀도로 개발하는 경우 저층보다는 고층으로 건설함으로써 넓은 녹지를 마련하여 옥외 공간의 풍부함을 향유할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마포아파트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그러한 경향을 보이지만 계획의 근본 취지는 고밀 개발의 방편으로 적층 주택의 채용을 의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포아파트 입면 © LH
한편, 부지 자체가 당초 주변 지역과 격리된 곳이었던 만큼 담장으로 둘러싼 단지 형태에 아파트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는데, 이 역시 향후 아파트단지 개발의 전형이 되었다. 고밀화로 인한 주거 환경의 문제와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폐쇄적인 형태로 인한 도시 조직 구성상의 문제가 현행의 아파트단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 원형을 제시한 마포아파트의 개발 방식은 공과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자연환경의 보전 및 주거 환경의 질적 향상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미국에서의 계획 단위 개발(PUD) 개념과는 달리 마포아파트는 개발 계획 당시부터 토지 이용률을 높이는 것을 주된 취지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 개발의 향방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ANN
최두호 ㈜토문건축사사무소 대표
최두호 (주)토문건축사사무소 대표
필자는 1952년생으로 청주고등학교,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을졸업했다. 건축사와 도시학 박사로서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 근무(1977~1990)했으며, 1990년 9월 15일 ㈜토문건축사사무소를 창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는 건설교통부 중앙건설 심의위원, 서울시공공건축가 총괄계획가,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한국주거학회 부회장, 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