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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지현의 철도 공공건축 칼럼 4

철도역의 상징물, “한 세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철도역 같은 건축물은 그런 점에서 보면 보물단지 같은 공간이다”

등록일 2024년08월19일 09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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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지현의 철도 공공건축 칼럼 4

철도역의 상징물, “한 세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철도역 같은 건축물은 그런 점에서 보면 보물단지 같은 공간이다”

 

연재 순서_ 역의 아이덴티티 찾기 ❙ 철도역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기 ❙ 동선 분석 ❙ 철도역의 상징물 ❙ 상업시설

 

 

철도역의 상징물

 

철도는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하는 시설 및 차량 등을 포괄한 운송 체계를 말한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로,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교통수단이다. 비행기와 달리 도시 한복판까지 들어가 대중교통까지 연결되는 편리한 시설로, 친환경이 대두되는 오늘날 또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시설이기도 하다.

도심까지 이르는 철로로 인해 철도 건설은 도시계획상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철도역은 매일 어마어마한 유동인구를 소화해내면서 주변 개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철도시설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한번 건설한 철도 시설은 주변이 아무리 변해도 대부분 수세기에 걸쳐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역에 대한 각인될만한 이미지가 많이 없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랜드마크적인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많아 상실한 오늘의 철도역, 그런 철도역에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싶다. 두 번 째 글에서 다루었던 «철도역의 기본 기능»에 충실한 역에, 아무리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고 하더라도 항상 빠지지 않는 상징성 있는 설치물들을 통일감 있게 넣어준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철거되지 않았던 옛 흔적들은 최대한 복원하고 현대화하여 각각의 역만이 가진 독창성을 조금씩 확보한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이런 작업들이 모이면 언젠가 우리나라 역의 «아이덴티티»가 보일 것이다.

 

 

역 명판

 

역의 파사드에는 언제나 역명판이 있다. 외국에 여행을 가도 그 나라에서 가장 먼저 익히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역”과 “지하철”이다. 그만큼 여행객들에게 이 건축물이 “역”임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건축물 자체의 웅장함으로 본능적으로 역을 알아보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 “역”이란 역명판으로 인지된다.

유럽의 역명판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각각 매우 규격화되어있다.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으나, 대부분 운영 철도청의 로고와 함께 표현되어, 맥도날드의 M 자만큼 빨리 그 나라의 철도청 로고를 인식하게 된다.

 

사진 1 유럽 철도역의 역명판

 

우리나라의 역명판은 최근 서체를 바꾸고 통일시켜 가독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유럽 역들의 역명판에 비해 어마어마한 크기로 설치가 된다. 그런데, 몇몇 역의 역명판은 그 크기에 비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역명판의 형태도 도시마다 제각각이라 일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는 코레일 로고가 들어가기도 하고, KTX 로고가 들어간 경우도 있다. 설치 방식도 역마다 다르다. 한글의 특성상 각 자음과 모음을 설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란 바탕에 흰 글씨, 또는 흰 바탕에 파란 글씨, 아니면 바탕 없는 글씨로 통일해서 일관된 이미지를 주어야한다. 간판들의 홍수속에서 누가 어디서라도 이 역명판을 보면, 한글을 잘 몰라도 이곳이 “철도역”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할 매우 간단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사진 2 우리나라 철도역의 역명판

 

 

시계

 

정해진 시각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기차, 기차역에서만큼 시계를 자주 확인하는 장소가 또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하지만, 손목시계조차 귀하던 시절, 철도역의 시계는 여행객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시계는 기차역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성당에는 언제나 종탑이 있듯이 기차역에는 시계탑, 또는 거대한 시계가 파사드에 있다. 파리 오르세 박물관의 유명한 모뉴멘털한 시계는 이 박물관이 원래는 기차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3 파리 오르세 박물관의 파사드 시계

 

프랑스의 경우, 구역사의 시계는 정기적으로 수리를 하며 잘 보존하고, 신역사의 경우 모뉴멘털 시계 디자이너에게 그 역을 대표할만한 시계 디자인을 맡기기도 한다. 그들도 이젠 아무도 역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계가 역에서 가지는 상징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4 브장송 TGV역 시계

사진 5 뚤루즈역의 시계 ©SNCF-AREP-Sindeu

 

휴대폰이 없던 시절 “시계탑”에는 약속한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던 때가 있었다. 아이티의 강국이라서 그런 걸까, 우리나라 역에는 시계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나라 제 1의 역 서울역에는 시계탑이 있다. 서울역 입구 계단아래 설치된 이 시계탑은 역의 규모에 비해 그 크기가 조금 초라하다. 오히려 구 서울역사 파사드의 시계탑이 훨씬 더 눈에 띈다.

 

사진 6 서울역 시계탑

 

우리는 우리나라답게 모뉴멘탈한 디지털 시계를 역명판과 함께 파사드에 설치하면 어떨까.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외국 역들은 그들대로의 아이덴티티가 있듯이, 격동의 시대를 헤쳐 오면서 다양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실을 현재 한국역의 아이덴티티임을 인정하고, 이곳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상징성 있는 건축적 언어를 새기기 시작했으면 한다.

 

 

열차 시각 전광판

 

어린 시절, 역에서 촤르륵 소리를 내며 수시로 기차 시간을 알려주던 대형 열차 시각 안내판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1999년 프랑스에 가서 그런 아날로그식 열차 시각 안내판이 남아있는 역들을 보고 아련한 추억에 젖었었다. 철도 시설 전문 건축가로 활동하면서도 발주처 클라이언트들과 항상 아쉬워했던 부분이 전광판의 디지털화였다.

 

사진 7 1960년대의 프랑스 뚤루즈역 전광판

 

기술의 발달은 생활을 너무나 많이 변화시켰다. 광고도 디지털화되었고, 심지어 동영상으로 틀어대니 그 많은 쏟아지는 정보들을 받아들이느라 열차시각 전광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필자는 열차시각 전광판을 하나의 대형 설치 예술품으로 간주하고, 전광판 주변 설치물들에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에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물에게 최적의 자리를 양보하자. 전광판 주변에는 조금의 여백은 남겨두자. 그런 작은 노력만으로도 역을 역답게 만들 수 있다.

 

사진 8 파리 셍라자르 역

 

 

옛 흔적들

 

최근 오랜만에 동대구역에 갔다가 우연히 구역사에서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옛 흔적들을 보았다. 화려한 증축부와 대조되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천장 모습에 아쉬우면서도 희망을 보았다. 저 격자 천장을 제대로 복원하고 그에 어울리는 조명으로 잘 살려내면 꽤나 아름다운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더 이상 칙칙한 구역사공간이 아닌, 럭셔리한 대기 공간으로 탈바꿈도 가능할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역들에도 다 철거되었을 거라 믿었던 이런 공간들이 많이 남아있을 지 모른다.

 

사진 9 동대구역 구 역사 내부 공간

 

필자는 매우 다양한 시대적 요소들이 모두 공존하는 공간이 우리나라 역만이 가진 매우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신 역사를 제외하고 도심의 증축-리모델링 역은 거의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증축을 하면서 기존 공간이 낡아 보이니 자꾸 철거하고 새로 단장을 하지만, 그러다보면 원래 증축 부분이 낡아 보이고 또 새 단장을 하고 싶어진다. 수십 년 전 건축가는 그 당시 가장 유행하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계획을 했을 것이고, 그 건축가의 입장으로 돌아가 21세기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새 단장을 시도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세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철도역 같은 건축물은 그런 점에서 보면 보물단지 같은 공간이다. 모든 것을 다 살릴 수는 없겠지만, 그 역이 가진 독특한 역사적 공간 하나쯤 제대로 보존하고 있다면, 충분히 누군가의 머릿속에 각인될만한 인상적인 역 건축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층 빌딩 숲 사이 갑자기 나타나는 고즈넉한 절간을 마주치는 반가움을 철도역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란다. ANN

 

김지현 아틀리에 제이아이 대표, 프랑스 공인 건축사 DPLG

글, 사진_ 아틀리에 제이아이

 

 

 


❙필자 김지현은 1999년 도불하여 프랑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철도청 SNCF 산하기관 자회사 건축엔지니어링사 AREP에서 근대 문화재 현대화 및 철도 시설 전문가로 프랑스 남부 지방 복합 프로젝트 팀장으로 활동하였다. 최근 작품으로는 뚤루즈 철도역사 현대화 프로젝트와 니스 셍오귀스탕 복합환승시설이 있고, 올해 초 귀국하여 아뜰리에 제이아이 대표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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