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지현의 철도 공공건축 칼럼 3
동선 분석, “사람들의 선택을 미리 예측하고 계획에 녹아들게 하여 의도대로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건축가의 힘”, “동선을 제대로 정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역은 스펙터클하면서도 꽤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어”
연재 순서_ 역의 아이덴티티 찾기 ❙ 철도역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기 ❙ 동선 분석 ❙ 철도역의 상징물 ❙ 상업시설
역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 버스, 자가용, 오토바이, 자전거 그리고 도보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한다. 도심에 위치한 철도역 같은 경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율이 그나마 높지만, 외곽지에 위치한 KTX역은 자동차 이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용객들의 이동 행태에 따라 접근 동선 공간 구성은 달라진다.
지하철 이용률이 높은 역의 경우, 지하철에서 역으로 연결하는 동선을 최대한 짧고 넓게 해주고, 필요하다면 역의 부출입구 및 안내소를 배치하여 역의 입구를 가시적으로 표현해준다. 자가용 이용률이 높은 역은 주차장의 위치와 단시간 정차 구역의 구성을 꼼꼼히 살펴야한다. 역의 존재감을 침해하지 않고, 보행자 동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행자 동선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장소다. 특히 공공건축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장소로, 접근 방식은 공평하게 주어져야한다. 공공건축을 계획할 때 도보로 접근이 용이한 곳,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건축가로서 가장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이라는 표지판을 향해 가던 중,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합류하여 한 방향으로 흘러가듯 움직이게 되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사람이 많아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왠지 모르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게 몇 분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누가 봐도 «역»임이 확실함을 알려주는 표시가 있다면 이미 이 계획은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역»은 어마어마한 수의 이용객이 수도 없이 오고 가는 공간이다. 어떤 이는 채 5분도 머무르지 않지만, 어떤 이는 다양한 이유로 몇 시간을 머무르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서있는 공간은 미리 예측하여 통로를 분리시켜 접목 현상을 방지한다. 움직이는 동선, 머무는 동선, 잠시 멈추는 동선을 예상하고 공간 계획을 해야 하는 매우 특수한 장소이다.
기차를 타는 동선과 역에서 나가는 동선을 주출입구 및 부출입구와 가장 먼저 연결해주고, 동선에 인접한 정적인 공간에 열차 출도착 정보판을 배치하여 잠시 멈추어 정보를 확인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한다. 동선이 얽히면 빨리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하는, 혼돈스러운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주요 동선을 제대로 정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역»은 스펙터클하면서도 꽤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사진 1 기차 타는 곳, 나오는 곳, 출발 정보, 도착 정보가 모두 모여 있는 서울역
사진 2 뚤루즈역 – 주동선 옆에 배치한 대기 벤치들. 대형 안내판 설치로 멀리서도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했다.
장애인 동선
한국은 레벨차가 매우 많은 지형을 가진 나라다. 더구나 극심한 강우량으로 건물 자체의 레벨을 높이 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지하철 입구는 침수 방지를 위해 항상 높이 설정한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해보면,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을 무의식적으로 통과하면서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가파른 길, 울퉁불퉁한 보도 블록, 높은 버스, 경사로가 가파른 건물, 가려진 엘리베이터 등 조금만 몸이 불편하면 한 블록도 움직이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사진 3 서울역 - 시계탑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서도 공간까지 단절시키는 램프
소제목이 «장애인» 동선이지만, 이동의 자유를 외치는 것은 비단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유아를 동반한 어른,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그저 오늘 너무 피곤한 사람들 또한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시설을 함께 이용한다.
필자는 공공건축으로서의 철도건축만큼은 이런 «장애인» 시설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수직 동선은 주동선과 동일선상에 계획되어 다른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섞여서 움직일 수 있길 바란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램프, 엘리베이터가 배치되어 속도는 서로 달라도 모두 함께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적어도 엘리베이터나 램프가 메인 동선에서 바로 눈에 띄어 시각적으로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4 프랑스 벨포르 TGV 역 - 사이트의 레벨차를 긴 램프로 연결하였다. (©SNCF AREP M. Vigneau)
길이가 허락되어 램프가 계단을 대체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거대한 램프를 이용하여 나무와 벤치를 배치하여 주출입구를 좀 더 다채롭게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휠체어, 자전거, 유모차, 캐리어 등을 가지고 나란히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공공건축인 «역»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 도시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5 프랑스 헨느역 (©파르칼 베르나르동)
차량 동선
자동차는 참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특히나 한국은 차량으로 이동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심지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차량 우선인가 싶을 정도로 자동차들이 보행자 앞을 거리낌 없이 지나간다. 차량 이동이 많은 교차로에서 간혹 지하도나 육교를 이용해서 길을 건너야 할 때는 뭔가 억울해진다. 역의 광장 앞은 단기정차 차량 및 택시 등이 보행자 통행에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역 앞은 신호등을 몇 번을 거쳐서야 역 앞에 도착할 수 있다.
이왕이면 보행자가 좀 덜 기다릴 수 있는 장소였으면 한다. 자동차는 좀 더 먼 거리도 빠른 시간 내에 움직일 수 있으니, 조금만 돌아가는 수고를 감수해주었으면 한다. «역»에 도착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역의 주차장에 도착하면, 주차장과 역을 연결하는 «통로»를 통해 주요 동선, 역의 가장 중심부에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주차장에서의 간결한 동선이 보장될 때, 사람들은 불법 정차보다 주차장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부산역의 경우, 차량 동선을 측면과 역의 뒤쪽으로 빼주어 보행자 진입과 차량 진입을 분리시킨 경우다. 차량으로 인한 시선 가림이 없어 자신의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파악하는데도 유리하다. 단, 선상 주차장에서 역으로 연결되는 보행로는 차량 동선과 얽혀 이용이 매우 불편하다. 북항쪽 도로에 불법 정차가 기승을 부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서울역의 경우, 광장쪽 단기 정차 구역으로 인한 공간 단절도 있지만, 주차장에서 역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아울렛을 통과해야 한다. 역에 처음 오는 여행객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선택은 결국 보행자 동선에 따라 달라진다. 어디에서 내려야 가장 가깝고, 어디에 주차를 해야 가장 편리한가. 이러한 선택을 미리 예측하고 계획에 녹아들게 하여 의도대로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 이 또한 건축가의 힘이 아닐까. ANN
김지현 아틀리에 제이아이 대표, 프랑스공인건축사 DPLG
❙필자 김지현은 1999년 도불하여 프랑스 파리 라빌레트 국립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철도청 SNCF 산하기관 자회사 건축 엔지니어링사 AREP에서 근대 문화재 현대화 및 철도 시설 전문가로 프랑스 남부 지방 복합 프로젝트 팀장으로 활동하였다. 최근 작품으로는 뚤루즈 철도역사 현대화 프로젝트와 니스 셍오귀스탕 복합환승시설이 있고, 올해 초 귀국하여 아뜰리에 제이아이 대표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