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로마는 현대 도시를 반영한다
로마 Rome, 흔적을 따라 걷다
아주 오래된 흑백 고전영화가 떠오른다. 왕실의 정해진 규율에 숨 막혀 하던 앤 공주는 거리로 뛰쳐나와 조 브래들리라는 한 신문기자를 만나게 되고 젤라토를 먹고 스쿠터를 타며 연일 로마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을 맡고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여 1953년 개봉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스토리이다.
영화를 통해 로마가 전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지기도 했지만 일찍이 로마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 손색이 없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누비던 스페인 광장, 마르첼로 극장, 베네치아 광장, 산타젤로 성, 트레비분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의 진실의 입 등에서 잘 보이듯 로마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고대 유적이 잘 보존된 세계적인 도시이다.
출장을 겸해 찾게 된 로마는 여전히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전율이 느껴지는 도시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 개봉한 지도 이미 60여년이 넘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다는 자체가 이내 부럽기 그지없다. 해외 여정이라는 자체가 늘 그렇듯 바쁜 일정 가운데 취해보는 잠시간의 휴식은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다. 고대 역사의 도시 로마를 찾게 되었는데 하루 일정을 비워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잠시 노천카페에 앉아 젤라토를 맛보고 트레비분수에 앉아 세계 각국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표정들과 움직임을 지켜보는 나는 즐겁다. 극적인 바로크 양식을 보여주는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활용한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과 어우러진 분수에 로마를 다시 한 번 찾을 것을 약속하며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웃음이 함께 한다.
검투사의 생생한 싸움 장면을 그린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배경이 된 콜로세움은 여전히 로마를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손색이 없다. 검투사들과 맹수와의 잔혹한 여흥을 즐기던 당시 로마인들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과 오버랩 되기도 하지만 거대한 콜로세움의 위용은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온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로 포로 로마노를 사이에 두고 올라본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포로 로마노 유적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조망할 수 있다. 포로 로마노는 비가 오면 잠기는 습지였지만 하수시설을 정비하면서 로마 도시생활의 구심점이자 로마제국의 심장 역할을 한 장소였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의 대전차 경기장도 당시 치열한 전투장면을 회상하게 만든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로마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광장과 베네치아 궁전, 신고전주의 양식의 백색 대리석 건물인 통일기념박물관과 트라야누스황제의 상 역시 특별한 볼거리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계단에 17세기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주민들이 가파른 언덕의 교회와 스페인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켜 만들어졌고 교회의 종탑과 오벨리스크가 인상적이다. 매년 5월이 되면 적색과 분홍색 꽃으로 장식된 스페인 계단과 함께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좁은 골목길을 거닐어 보는 것도 꽤나 운치가 있다. 그러나 내가 얼마 전 간 날의 스페인 계단은 이상하게도 흰 천막 가이드라인이 둘러져 있어 아쉬웠다.
로마를 방문하고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바타칸 시국일 것이다. 로마 북서부에 위치한 카톨릭 교황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지만 전 세계의 8억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하고 324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설하게 된 것이 현재 바티칸 시국의 시작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들어선 이후 1929년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국 사이에 라테란 조약이 체결이 체결되었고 교황이 다스리는 독립된 주권국으로 인정되었다. 바티칸시에는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 궁전을 중심으로 한 성베드로 대성당,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교황궁 등을 포함하며 카톨릭의 성지인 만큼 연일 많은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특히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미켈란젤로가 만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대형 돔의 동적인 빛은 환상적이다. 6만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과 고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수천 년 역사의 로마는 현대 도시를 반영한다. 오래된 영화 속 기억을 더듬어 태양이 강렬했던 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골목과 광장을 오가며 로마를 느끼는 나는 당시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 거닐었다. 오래된 돌바닥, 건물과 건물 사이가 만들어낸 좁은 골목길, 넓게 펼쳐진 광장, 오래전 로마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건물의 벽체 …. 여전히 나의 마음은 로마에 있다.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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