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이해민선, 전가영, 지선경 등 4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 ) on PAPER’
종이를 활용하여 설치, 입체, 평면 작업을 소개하며 종이가 표현해낼 수 있는 다양한 구조와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획
서울 마포 스페이스 소에서 4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 ) on PAPER’ 전시가 5월 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종이를 활용하여 설치, 입체, 평면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며 종이가 표현해낼 수 있는 다양한 구조와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획이다.
김윤수, 이해민선, 전가영, 지선경 등 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 ) on PAPER>전은 ‘종이 위에’ 올리는 혹은 ‘종이’와 함께 사용되는 재료의 표기 부분을 비워 작품의 지지체인 종이가 다양하게 해석되고 조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상상해 보는 의도를 담고 있다.
종이의 재료 자체의 물성처럼 종이는 손으로 쉽게 접히기도 찢기기도 하고, 한없이 가벼워 바람에 날리기도 하지만 켜켜이 쌓인 종이는 돌덩이나 쇳덩이보다도 무겁기도 하다. 빛을 투과시킬 만큼 얇으면서 상자로 만들어질 정도로 두껍기도 하며, 낱장 종이는 그것이 접힐 때 마다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우리는 무언가를 담을 수도 있다.
이렇듯 전시는 종이로 만들어야 하는, 종이라는 재료 자체의 특성이 드러나는, 그래서 더욱 우리의 시선을 잡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ANN
전시기간: 2022년 4월 7일 ~ 5월 8일
참여작가_ 김윤수, 이해민선, 전가영, 지선경
자료_ 스페이스 소
(김윤수) on PAPER - 종이와 드로잉 그리고 아트북.
김윤수의 <바람이 밤새도록 꽃 밭을 지나간다>(2016)는 이번 전시에서 3가지 모습으로 관객과 만난다. (연필이 아닌) 흑연으로 그린 <바람> 드로잉 36점을 종이에 인쇄하여 아코디언 구조의 책으로 제작한 작가는 36장의 종이가 만들어낸 책장의 옆면에 들꽃이 핀 평원을 색연필로 그려 놓았다. 종이 위를 스치듯 지나간 36개의 바람의 모양과 자리를 그려낸 듯한 그의 드로잉들이 앞과 뒤, 시작과 끝이 모호한 아코디언 제본 형식 안에서 고요한 바람이었다 강풍으로, 종이 위에 휘몰아치다 소리 없이 가라앉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밤새도록 그가 그려 놓은 꽃밭 사이에서 머문다.
전시장의 살짝 높은 좌대 위에 놓인 또 하나의 <바람이 밤새도록 꽃 밭을 지나간다>는 네 옆면에 알록달록한 색 점들이 흩뿌려진 듯 그려져 있는데 이 육면체의 종이 더미의 맨 윗면은 그의 ‘바람’이다. 360장의 바람들을 시간의 결로 쌓아 층을 만들고 그렇게 축적한 바람들의 네 면에 들꽃이 가득 피어난 계절의 평원이 그려진 작품은 제목 그대로 바람이 꽃밭 안에서 불고 또 불고 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에서 인용한 작품명 <바람이 밤새도록 꽃밭을 지나간다>는 드로잉이자 책이고 그림이자 조각이며 시이다.
김윤수, 바람이 밤새도록 꽃밭을 지나간다, 2016, 바람드로잉을 종이에 인쇄하여 360장의 시간의 결로 쌓고, 그 _바람들_의 둘레에 색연필로 들꽃이 가득 피어난 계절의 평원을 그리다, 10.3×32.2×21.4㎝
(이해민선) on PAPER - 종이와 나무가 같이서서 그렇게 조각이 되다.
이해민선의 <같이 서서>(2022) 연작은 2017년 개인전에서 소개되었던 50여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성미산에서 온 성미>(2016-17)의 작품 일부를 변형-변주하여 재구성한 2022년 버전의 작품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유채 드로잉 작품들이 2017년에는 한데 모아져 이해민선 식 ‘(나무-)덩어리’가 되어 대형 설치 작품으로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 위에 나무의 줄기 부분을 그린 작품들 한 점 한 점, 나무 줄기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고 바라보도록 설치 되었다. 한동안 작업실 ‘나무 설치 드로잉’ 케이스에 잠자고 있던 여러 드로잉들 중에서 선별한 나무 줄기들을 독립적으로 세우기 위해 작가는 중고 서점의 오래된 책들을 찾아 나섰다. ‘Landscape’, ‘Mexico City’, ‘Furniture’ 라는 제목의 책들은 나무와 자연스럽고, 표지가 찢긴 ‘피노키오’는 나무인형이 주인공이라 그의 나무와 ‘같이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붙들고 선 책들은 그의 이전 회화와 드로잉, 설치 작품들에서 등장한 ‘직립식물’들의 여러 장치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 오래된 책의 표지들을 좀 더 자세히 보며, 헌 책 위 낙서인지 작가의 그림인지 모를 종이 위 나무에서 책으로 이어진 선들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림을 붙들고 선 책들은 그림책이 되고 책 사이에 끼워진 나무 그림들은 책과 ‘같이 서서’ 하나의 나무-조각이 되었다.
이해민선, 같이 서서, 2022, oil on paper, book, dimensions variable
(전가영) on PAPER - 종이 접기. 차원의 전환
사물과 현상의 내면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탐구해오고 있는 전가영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질서를 정의하고 시각적으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매뉴얼화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작 <꿈.드로잉>(2021)과 신작 <꿈.형태>(2022) 연작을 선보인다. 본 연작은 두 친구의 간밤 꿈에 작가가 등장했다는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되었다.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꿈’에서나 가능한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꿈’이라는 사건이 가지는 시공간의 유연성,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구조를 상상하고 이 예측불가능하고 유연한 시공간을 시각화 하기 위하여 곡면접기(Concentric Circle) 방식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어낸다. 낱장의 평평하고 납작한 종이는 ‘접기’를 통해 평면에서 입체로 차원이 전환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입체들은 여러 방식의 조합으로 인해 또 다른 형태의 구조를 가지며 확장-변형된다.
전시장에는 색을 입은 여러 크기의 종이들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곡면접기 방식으로 구축된 입체가 되고 이 입체들이 회전하고 틀어지고 서로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의 조각들로 변신한다. 벽에 붙고 좌대 위에 올려지며 와이어의 끝에 매달린 대형 모빌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마치 서로 다른 시공간의 상황들에 하나의 주인공이 등장하며 서로 만나고 겹쳐지고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되는 ‘꿈’의 구조와 닮아 있다.
전가영, 꿈. 형태, 2022, polypropylene paper, folding, color pencil, dimensions variable
(지선경) on PAPER -
그리기와 오리기. 파피에 콜레
개인의 경험과 기억, 사건에 대한 단상을 문학적 상상, 철학적 개념과 연관지어 기하학적 요소로 구성된 추상적 언어로 시각화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선경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종이를 재료로 한 컷아웃 드로잉과 콜라주를 중심으로 한 근작과 신작을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 작중 <bring about(_____)>(2019)은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을 고찰하고 분류하여 작업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 스피노자의 『에티카』 3부 「감정의 기원과 그 본성에 관하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으로 일상적 감정과 경험에 대한 주관적 인상을 수십 장의 드로잉으로 만들고 이 각각의 레이어를 서로 조합하여 감정의 콜라주를 만들어 매다는 방식의 설치로 감정의 층위, 표출, 변동의 상태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의 작업 전반에 드러나는데, 작가는 다양한 재질과 두께의 종이들을 선택하고 이를 스프레이 페인팅으로 처리한 후 오려내는 컷아웃과 오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지티브와 네가티브의 조각들을 접고 겹치고 다시 오려 선과 면, 형태를 조합하는 콜라주 방식을 이용한다. 전시장 한쪽 바닥 가까이에 설치된 <부랑아의 소지품II>(2022)는 작품 설치 중에 즉흥적으로 드로잉-콜라주-설치된 작품으로 한국과 독일, 서울과 청주, 영광을 오가는 부랑아 같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상징하는 듯 표현하고 있다.
지선경, Malpla.24, 2021, spray paint on paper, 59x5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