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예술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독특한 작품의 매력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어, 현대 사진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신작으로 뒤셀도르프 근처의 라인강변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터 브뤼겔 풍의 고전적인 주제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근래의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두기로 인해 분산된 인파의 모습은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며, 규범에 얽매여 있는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국내 최초로 안드레아스 거스키 개인전《Andreas Gursky》을 8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거스키의 대표작 40점은 선보이며, 2점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äufer>(2021)과 <스트레이프 Streif>(2022)가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에서는 <파리, 몽파르나스 Paris Montparnasse>(1993), <99센트 99 Cent>(1999, 리마스터 2009)와 같은 대표작을 포함해 198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코로나 시대에 제작된 2022년 신작까지 총 40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흥미롭다.
F1 피트 스톱 I F1 Boxenstopp I, 2007,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F1 피트 스톱 I>은 F1 경기 시작 전 두 팀이 한창 정비 중인 순간을 포착한 창의적인 작품이다. 경주차와 선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정비사들이 작업하고 있는 과장된 모습을 두 폭의 그림과 같은 단순한 구도 안에 담아내 드라마틱한 효과를 창조했다. 유리창 너머 장면을 촬영하는 관객들은 장면의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킨다. 작가는 숨겨진 경기의 주인공인 차량에 집중된 군중의 시선을 통해 군중의 심리를 탐구한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은 선물거래소의 심장부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가장자리의 좌석들이 가운데의 팔각형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원형 경기장과 같다. ‘플로어 트레이딩’이라는 대면 선물 및 상품 거래 방식을 포착한 이 작품은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한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라인강 인근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트레이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 코스의 엄청난 경사를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니터에서 보이는 극적인 충돌의 순간은 직접적인 경험과 복제된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게 한다.
아마존 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이 작품은 선반에 빼곡히 들어찬 상품들을 모두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과 압도적인 크기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된 ‘시지각’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렇게 드러난 이미지는 소비 지상주의의 핵심과 자본주의의 폐혜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2018년작 <라인강 III>은 거스키의 유명한 1999년작 <라인강 II>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작품이다. 두 사진 모두 여름에 촬영했으며 배경과 구성은 사실상 거의 동일하다. 생기 있는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뀐 <라인강 III>에서는 잿빛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2018년의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고 동식물이 살기에 가혹한 환경이 된 사실을 반영한 디스토피아적인 이 작품은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 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크루즈 Kreuzfahrt, 2020,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크루즈>에서 거스키는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를 여러 단계에 걸쳐 촬영한 후 이들을 디지털 기술로 조합하여 창조한 배를 ‘노르웨이 랩소디’로 명명했다. 일정한 크기의 창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는 전체와 세부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각각의 창문들은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서사적 요소로 자리한다. 1993년작 <파리, 몽파르나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품은 디지털 편집을 통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독일 태생으로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사진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작가는 사진의 확장적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실험해 온 작가는 촬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특히 공장이나 아파트와 같이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전시는 총 7개의 존으로 구분되며, 각 전시실은 ‘조작된 이미지’, ‘미술사 참조’, ‘숭고한 열망’이라는 큰 주제들로 구성된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해 편집하는 ‘디지털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을 도입한 작품과 추상 회화나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성을 더한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사진 예술의 틀을 확장해 온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감상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수백만 송이의 튤립으로 가득 찬 들판의 모습을 구성하는 세세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헬리콥터를 타고 먼 거리에서 튤립 밭을 촬영하고 이를 완벽한 수평적 구성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기하적 추상화에 가까이 다가갔다. 튤립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 이 작품이 실재하는 대상을 찍은 사진이라는 점을 확고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사진이 대상을 떠나 완전한 추상 미술이 될 수 없다는 상반된 개념을 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현대미술에서 사진 장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며 한국 예술계에 다양한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평양 VI Pyongyang 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거스키는 현대 사회와 경제의 축소판을 군집의 형태로 보여주는 장소들을 촬영해 도시의 스펙터클한 모습을 담아왔다. 2007년 작가가 직접 평양에 방문하여 촬영한 <평양> 연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 게임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선전 구호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상징은 최대한 배제하고, 10만 명이 넘는 공연자가 이루어내는 시각적 장관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북한의 집단성과 특수성에 집중한다.
이처럼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회고전은 현대 사진 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ANN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작가
자료_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Andreas Gursky》 전시 전경(1)_studio_kdkkdk
안드레아스 거스키 (Andreas Gursky)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한 거스키는 40여 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시대의 감성과 정신을 날카롭게 포착함으로써 현대 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스키는 에센의 폴크방 국립 예술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로부터 유형학적 사진을 공부했다. 작가는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 순회전을 비롯해 퐁피두 센터(2002), 시카고 현대미술관(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 하우스 데어 쿤스트(2007), 빅토리아 국립미술관(2008),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2012), 헤이워드 갤러리(2018)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