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수열의 건축이야기 01 ‘건축이 주는 놀라운 충격’
Architecture Story of Architect, Soo-youl Lee
“유럽의 고전건축은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같은 기억을 가지고 또 다음 세대에 그 장소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모여 도시가 만들어진다.”
선생님들과의 만남
설계사무실에서 처음 실무를 시작한 젊은 건축인들이 갖는 기대는 남다르다. 나에게는 토문이 그러하다. 내가 그린 도면 그대로 실재 건물로 지어지는 것이 몹시 신기해서 밤새는 줄 모르고 선을 그려냈던 즐거운 기억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포스트모던건축과 해체주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국내에 소개된 몇몇 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이렇게 저렇게 따라해 보며 만들었던 프로젝트들이 사내 자료실 한구석에 추억과 함께 남아 있다. 그때에는 획일적인 건축, 지역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무시한 건축이라고 근대건축을 부정했으며, 그 한계를 벗어나려 했던 많은 시도들이 그때의 시대정신이라 생각했다. 몹시 서툴지만 시대에 맞는 건축흐름 안에서 디자인을 고민하고 애쓰던 신참내기로 나를 기억한다. 새로운 것, 이전엔 보지 못했던 건축을 찾아 해외 잡지를 뒤지고 또 뒤지며 따라했다. 그것이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충동과 이를 만족시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시 건축이 나에게 준 충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는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민, 손진 두 분의 선생님과 함께했던 작업이다. 항상 새로운 것만을 찾던 나에게 유럽의 고전건축은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두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 도면집 스케치와 사진들은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빈자리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나눈 두 분의 대화 안에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건축의 세계가 있었다.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며, 무조건 보따리를 싸서 아내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향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로마 판테온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도시는 로마다. 건축역사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과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봐 왔던 이천년 전 고대건축물들이 주는 근원적 매력을 실재로 느껴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나보나 광장을 지나 좁은 길로 판테온을 향해 가면서 두근거렸던 흥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름 43m의 실린더모양에 같은 치수 높이에 이르는 반구를 얹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주는 명쾌함은 여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건축 재료로 돌을 사용하여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보를 놓아 공간을 만드는 방식에서 넓은 내부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많은 수의 기둥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필요한 기둥은 반대로 내부에서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개방감에 방해가 되고 공간을 잘게 나누어 버리게 마련이다. 기둥 없는 넓은 내부 공간은 그래서 로마인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절대공간에 대한 바램이었다. 만신전이라 이름 붙여진 것처럼 모든 신을 위해 봉헌된 판테온은 바로 그 끊임없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광장으로 부터 입구를 지나 판테온 내부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함께 그 감동을 나누고 싶다. 전이공간인 입구를 사이에 두고 광장에서 판테온 내부로의 이동은 단순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옮길 때 느끼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것 같은, 전에는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상이다. 로마인들의 상상력의 힘을 빌어 경험한 절대공간이다.
밖에서 보는 판테온은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다. 거대한 반구 형태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지붕 자체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고, 지붕 하단에 있는 주름과 안쪽의 속이 빈 사각 틀들의 구성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위한 디자인이기 이전에 철저히 구조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천오백년이 지나 르네상스의 거장 부르넬레스키에 의해 이러한 구조방식은 다시 한 번 피렌체성당의 돔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미켈란젤로의 성베드로성당의 돔 또한 여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후에도 넓은 절대공간에 대한 이상은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가들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는 교훈을 주고 있다.
도시의 건축, 밀라노
모든 도시들이 서로 다른 모양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기후와 지역 특성 그리고 살아가는 문화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도시의 서로 다른 점 가운데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점은 바로 도시의 형태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적 거점을 중심으로 각각의 도시들은 확장을 거듭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일자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고 이들이 머물 공간 마련과 함께 도시는 커졌다.
밀라노는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생애 중 오랜 시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거장의 도시이며, 로마시대의 직교체계의 로마병영도시 모습이 남아있는 로마도시이기도 하다. 구글 위성사진에서 지금의 밀라노를 찾아보면 마치 나이테처럼 생긴 선명한 세 개의 동심원이 보인다. 시대별로 확장되면서 생긴 도시의 나이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스케치 중에는 당시 밀라노 확장에 관한 것이 남아있다. 그 안에는 흑사병이 몰고 온 아픔을 간직한 도시를 건강한 도시로 만들기 위한 거장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것 또한 지금의 밀라노가 있기 까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정 중의 하나 임에 틀림이 없다.
도시 형태는 그 자체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지웠다 다시 써도 먼저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는 양피지를 비유로 도시가 역사적 충적물임을 역설한 스승들의 말씀을 기억한다. 기능을 다하지 못해 망하고 사라진 도시와 오늘날 까지 발전을 거듭해온 도시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들을 통해 그 차이를 도시 형태에서 읽어낼 수 있다.
시대별로 잘 정리된 밀라노 도시의 지도를 연구하면서 도시의 각 부분들이 과거로부터 역사와 함께 명확히 정의되어 있는 것에 놀랐다. 로마병영도시가 새로운 두오모성당 건축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여 그 성당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의 원형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골격 안에서 나이테를 더하며 성장한 밀라노 도시 형태에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들과 광장, 도로와 기타 작은 부분들의 세세한 정보들이 포함되어있다.
일관된 모습으로 오늘의 후손들에게 까지 이른 도시는 이에 대한 밀라노인들의 자긍심과 노력의 결과이며 그들이 갖는 정체성이다. 추억을 더듬으며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와 함께 성당 앞 광장의 작은 가게에 앉아 같은 장소에 대한 지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도시가 밀라노다. 같은 기억을 가지고 또 다음 세대에 그 장소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모여 도시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도시가 갖는 진정한 의미의 정체성이 아닐까? ANN
이수열 토문건축사사무소 사장, 한국건축가협회 사업부회장
자료_ 이수열, 토문건축
이수열 (주)토문건축사사무소 사장, 건축가
건축가 이수열은 (주)토문건축사사무소 사장이며 한국건축가협회 사업부회장이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거장 Giorgio Grassi와 논문을 같이했고, 스튜디오 Liverani/ Molteni와 함께 School Complex, Capiage-Intimano 국제현상설계에 참여 1등 당선되었다. 오랜 유학생활을 보내고 귀국 후 토문건축 디자인 본부장을 거쳐 현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한 바 있다. 건축가 이수열은 “건축역사로부터 형태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자유로움은 그 형태를 잘 알고 나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형태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라는 본인의 스승인 이탈리아의 거장 조르죠 그라씨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일반건축물 분야의 혁혁한 성과를 나타내왔다. 주요 작품으로 두바이 미하엘 슈마허 비즈니스 애비뉴,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2014아시안게임경기장, LH본사신사옥, 정부세종청사 3단계1구역 등 다수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대표건축가로 참여하거나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