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인권 존중, 디지털 소통이 공존하는 예술세계를 총망라한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이 웨이웨이, 세계적인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부터 최신작 <로힝야>(2021)까지,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 1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어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The Animal that Looks Like a Llama but is Really an Alpaca)>, 2015, 벽지설치, 가변설치,,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이 작품은 감시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동안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의 상징인 ‘새’와 수갑, 감시카메라 등을 조합해 만든 이미지다.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 사회의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재를 종종 망각한다.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수많은 감시 카메라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의 문양으로 빛나는 공간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인 감옥과 같다.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내년 4월 17일까지 마련되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을 통해서다.
전시의 제목처럼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에 대해 고민해온 작가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구명조끼 뱀(Life Vest Snake)>, 2019, 구명조끼 140벌, 65x2,250x85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사진: 김윤재 ⓒ Kim Yoonjae, 구명조끼 뱀은 레스보스 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를 연결한 것이다. 아이 웨이웨이는 쓰촨 대지진 때 바닥에 흩어진 아이들의 가방을 연결하여 길고 커다란 뱀을 만들었다. 바로 <천장의 뱀>(2008)이다. 가방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고 구명조끼의 주인도 없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남긴 흔적에 주목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일깨운다. 중국 고사 중 한 화가가 용을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실제 용을 보고, 자신이 그간 그려온 것은 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눈앞에 뱀의 형상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이 비극의 실체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조끼의 주인들, 가방의 주인인 아이들, 그들은 왜 그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고, 어떻게 재발을 막을 것인가? 그의 작품 속 뱀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문제를 환기시킨다.
나무, 2015
전시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베니스의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의 베렌고 공방과 협업하여 제작한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검은 샹들리에>(2017-2021), 중국 도자기 생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의 도자기로 제작된 <여의>(2012),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등 그의 대표작이 총망라된다.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관람객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을 통해 작가가 걸어온 여정을 따라 걷게 된다. 미술관 마당에서는 높이 6m의 대형 설치 작품 <나무>(2015)는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죽은 나무 가지와 뿌리, 그루터기 등을 조합한 것으로 특별하다.
옥의, 2015
6전시실에서 선보인 <옥의>(2015)는 중국 한나라 시대 황제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으로 된 갑옷(玉衣)’에서 유래한 작품이다. 작품은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됐다. 아이 웨이웨이는 <옥의>를 비롯해 신석기 시대 토기, 옥, 징더전의 도자기 등 중국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현대미술과 결합시킨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7전시실에서는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을 선보인다.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것이다.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검은 샹들리에(Black Chandelier)>, 2017-2021, 무라노 유리, 지름 185cm 높이 240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무라노 베렌고 공방에서 제작,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검은 샹들리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의 베렌고 공방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무라노는 13세기부터 유리 공예가 발전된 지역이다. 하지만 고도의 숙련을 요구하는 유리 공예를 계승하려는 인력이 감소하고, 저가의 모조품이 범람하여 무라노 유리 공예의 명성이 위협받고 있다. 보통 샹들리에는 빛을 반사시키는데, 아이 웨이웨이의 샹들리에는 빛을 흡수하는 검정이다. 두개골을 비롯하여 인체를 구성하는 골격으로 구성된다. 시각적으로, 개념적으로 전복해온 아이 웨이웨이는 검은 샹들리에를 통해 샹들리에의 개념을 뒤집는다.
미디어랩에서는 <대리석 헬멧>(2015), <대리석 포장용기>(2015)와 같이 대리석으로 제작된 작품과, 도자기로 만든 작품 <민물 게>(2011) 등을 볼 수 있다. <민물 게>는 2010년 상하이 시에서 작가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철거했을 때 작가가 인근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상하이 명물인 민물 게 요리를 대접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이를 기념한 작품이다. 작가는 민물 게(河蟹, he xie)의 발음이 중국 정부 슬로건인 ‘화해(和諧, he xie)’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품을 통해 국가 권력과 검열 상황을 풍자한다.
한편, 복도공간에서는 작가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표현의 자유’, ‘예술과 행동주의’, ‘정부, 권력, 그리고 도덕적 선택’, ‘디지털 세상’, ‘역사, 역사적 순간, 미래’, ‘개인적 사유’ 등 6개 주제의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된다.
<2003년 베이징>, 2003,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0시간, 영상스틸,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2003년 베이징은 베이징 칭화대학교 학생들과 아이 웨이웨이가 베이징을 16개의 구역으로 나눠 자동차로 다니며 기록한 총 150시간에 달하는 영상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도시 혁신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과 도시가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다. 작가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후통(胡同) 구역을 제외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세세하게 기록했다.
<살아 있는 자(VIvos)>,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시간 52분, 영상스틸,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살아 있는 자는 멕시코에서 부패한 지역 경찰이 교육대학 학생들이 탄 버스를 지역 갱단에 적군 갱단이라고 허위정보를 전달하여 43명의 학생들을 납치한 사건을 다룬 아이 웨이웨이의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이다. 가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탄원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개인전에 실종된 학생들의 초상화를 전시했고, 그때의 조사 과정과 인터뷰 등을 모아 발표했다. 작가는 “이웃집 아이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지 4년이나 지났는데 정부가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정부인가. 그게 무슨 사회인가”라고 비판하며, 예술가인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조명(Illumination)>, 2009, 벽지설치, 컬러 프린트, 가변설치,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아이 웨이웨이는 시민조사단을 결성하여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작가의 블로그에 올렸다. 또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모아 무료로 배포했다. 작가의 블로그는 2009년 5월 정부에 의해 폐쇄 당했지만, 아이 웨이웨이는 트위터와 유튜브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조명›은 2009년 8월 12일 아이 웨이웨이가 탄줘런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청두에 갔을 때, 새벽 5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음악가 주오샤오 주저우와 함께 두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인 순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미학적 성취와 함께 이뤄낸 거장의 작품세계를 한 자리에 선보이는 전시다”라며, “작가가 제안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NN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아이 웨이웨이 작가
자료_ MMCA
아이 웨이웨이.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1957~)는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살게끔 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당시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조사단을 구성하여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작가는 중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 2015년부터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는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일련의 작품은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다. 1948년 파리 유엔 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 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19조)고 선언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완전하게 보장되지 못한 권리이다.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과 삶은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고, 억압과 감시에 도전하는 실천 행위와 같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에서 ‘인간’은 추구해야할 가치이며, 동시에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환경이며 조건이다. 아이 웨이웨이는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고 체념하지 않고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행동을 통해 상황을 변화시켜왔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꿈꾸고 현실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