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부터 현재까지 켜켜이 모인 일상의 역병을 치료하고 치유하는 민속문화 이야기
세 개의 큐브와 완충공간이 만드는 극적인 서사 구조 속에 일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3개의 큐브와 완충 공간에 담겨진 ‘일상+역병, 일상-역병, 일상±역병’에 대한 우리 삶의 아픈 기록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바이러스란 존재가 인간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내년 2월 28일까지 마련하는 <역병, 일상> 특별전은 우리 역사 속에서 역병의 기록을 짚어보고, 질병의 회복과 치료를 위한 민간의 노력을 민속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점에서 꽤나 유익하다. 나아가 ‘다시 함께’의 일상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렇듯 전시는 묵재일기’, ‘노상추일기’, ‘짚말’, ‘두창예방선전가’, ‘자가격리자의 그림일기’, ‘재봉틀’ 등 158건 353점의 전시자료와 영상을 통해 코로나19로부터 거슬러가 전통사회를 휩쓴 역병과 그 속에서 일상을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결국 죽었으니 비참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겠는가!” 역병이 창궐하던 조선 시대의 한 아버지가 역병으로 아이를 잃은 참담함을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전시는 정사(正史)와 일기를 넘나드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역병으로 인해 고단했던 인간 생활과 이를 이겨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법 등이 기록되어 의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묵재일기默齋日記』와『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를 관람객에게 최초 공개한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붉은색은 민간 신앙에서 역귀를 퇴치하는 색으로 인식된 것처럼 거리 배너와 전시 파사드는 붉은색의 홍보물로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이어진 전시는 크게 역병이 기록과 인간을 만났을 때로 시작해 인간이 역병을 예방할 때와 역병 속 우리가 함께할 때 등의 ‘일상+역병, 일상-역병, 일상±역병’ 독창적인 이야기로 전개된다.
전시 콘텐츠는 3개의 큐브 안에 담겨져 각자의 이야기를 발신하는 구조로 디자인되었다. 영상존인 큐브와 큐브의 사이 공간은 완충과 매개의 주제존 영역으로 ‘연대와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쏠쏠히 전해준다. 전시장 상부에서 내려다보면 관람객의 동선은 역병과 일상의 무한한 반복을 의미하는 ‘∞’을 자아낸다. 인류의 역사에서 위협의 존재인 역병이지만 우리는 항상 일상을 되찾기 위해 지혜를 생각하고, ‘함께’ 발휘할 것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전시 공간은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Benim Adım Kırmızı)” 서사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나는 00입니다’로 시작하는 챕터의 내용에서 잘 알 수 있듯 각각 ‘발병’, ‘치료와 치유’, ‘일상과 함께의 가치 회복’의 내용을 담고 있다.
“켜켜이 모인 일상은 곧 민속이 된다.”
전시 콘텐츠에 활용된 마감 재료의 다채로운 표현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관람 포인트이다. 벽과 시각물, 재료의 물성, 구조의 중첩과 교차가 만드는 드라마틱한 공간감을 연출되며 저마다의 큐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부식된 철판 구조물과 썩은 목판은 역병으로 인해 무너진 사회와 일상을 표현한다. 1부의 ‘발병’에서는 거대하고 방대한 텍스트 속에 폐거푸집과 부식철판(코르텐강)을 주 마감재로 사용한다. 유물 앞뒤에 여러 형태로 교차한 비계는 치료와 치유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잇는다. 자연스레 이를 담아낸 전시장은 민속을 상징한다. 2부의 ‘치료와 치유’에서는 건물을 수리할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비계구조가 병의 치유와 치료를 통해 몸을 새로 세우는 행위를 은유한다. 이를 담아내는 거대한 블랙박스는 치료와 치유에 대한 기억과 기록의 저장고가 된다. 3부의 ‘일상과 함께의 가치회복’에서는 거리두기와 언택트가 현재 시제가 된 우리들이 더 연결되어야 하고 투명해야 함을 폴리카보네이트와 거울이라는 소재로 대변하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길’이자 ‘문’ 구조는 변화와 상생을 만드는 새로운 시간과 가능성을 여는 통로며 출구임을 넌지시 보여준다. 이처럼 전시디자인의 유형 역시 민속박물관처럼 유물과 연계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생활상, 그 안에 담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소위 ‘민박 스타일’로 전달하고 있어 신선하다. 그 속에서 관람객은 관람이 ‘능동적 경험’이 되도록 돕는 여백이자 여지가 되면서 공간과 디자인이 뿜어내는 매력을 들춰보게 된다.
“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2020년 청첩장을 봉한 봉투의 문구처럼 전시는 역병 속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큰 고난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아가 암울한 시기에서 서로를 생각하고‘다시 함께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모두 ‘함께하는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에 대한 울림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억겁의 나날들, 이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곧 민속의 본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ANN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관장
자료_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 전시 기간: 2021.11.24.~202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