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숨 쉬는 나무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어떤 건축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집을 짓는 재료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딱딱하고 차가운 콘크리트와 달리 나무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안정감을 제공한다. 일본에서 전국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학교건물의 골조(목구조, 콘크리트구조)가 학생의 건강이나 학업 활동, 선생님의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목구조 학교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밖에도 '안정감' '부드럽다' '습도조절 가능' '친근감'을 주는 특징이 있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반면 골조가 콘크리트 구조인 학교는 '바닥에 탄력이 없어서 장시간 서 있는 것이 괴롭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추가적으로 '결로' '음의 반향' '춥다' '실내가 어둡다' '습도 조절이 불가능하다' '감기가 유행하기 쉽다'와 같은 부정적인 답변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로부터 나온 의견이라 그 결과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내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지인이 살고 있는 목조주택을 방문해 본 적이 있다. 캐나다 전문가들의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캐나다에서 지어지는 방식을 적용한 이 집은 1층 바닥이 콘크리트가 아니라 목구조였다. 우리나라에서 지어지는 주택은 보통은 1층 바닥이 콘크리트고 그 위에 온돌난방을 하고 마루재로 마감을 한다. 하지만 지인이 살고 있는 집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목구조로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마루재로 마감을 한 것이다. 실제로 바닥 위를 걸어보니 콘크리트 바닥과 달리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집 주인도 “가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머물다 오는데 아파트 바닥과는 달리 걸어 다닐 때 편안하고 무릎에 무리가 안가서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목구조 바닥의 탄성이 있기 때문에 발바닥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생활에서 체험하고 있었다.
"20세기는 어떤 시대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일본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는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였다"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들어 콘크리트 건축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콘크리트가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 산물 위에서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콘크리트는 그야말로 보편적인 건축구조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모래, 자갈, 시멘트, 철근으로 어떤 형상이던 척척 구현해 낼 수 있으니 어느 누구든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쿠마 켄고는 콘크리트가 탁월하게 쉬운 건축을 가능케 하는 이유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콘크리트는 강해서 그 위에 무엇인가를 덧달기에 가장 손쉬운 건축 재료이다. <중략> 모든 디자이너의 그 어떤 취향도 자유롭게 적용 가능하며, 저비용에서 고급 건축까지 어떤 예산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60년 대 이후부터 콘크리트가 보편적인 건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훌륭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단지 아파트, 고층 빌딩, 학교, 공공건물에서부터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건축 시장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건축가, 시공사, 건축주가 가장 선호하는 건축 재료도 역시 콘크리트다. '자기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예비건축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집은 곧 '콘크리트다'라는 의식이 그들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튼튼하고, 오래가고, 화재에 강하고, 벌레에게 먹힐 일도 없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재료가 콘크리트다. 건축가도 시공사도 콘크리트 건축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쿠마 켄고의 재료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는 "강할 것 같은 콘크리트는 몇 십 년 뒤에는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산업 폐기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며 콘크리트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문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의 말에 “몇 십 년 후에나 일어날 일을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어떤가? 콘크리트는 노화, 즉 구조로서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표면에서는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내부에서 '철근이 부식'되고 있거나 콘크리트 '자체의 강도'에 문제가 생겨도 우리 눈으로는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사 알아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된 부분만 교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는 나무와 인간의 건강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최근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실내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의 교감신경계의 활동을 낮춘다고 한다. 교감신경계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다. 연구조사 결과는 스트레스에 관한 건강 문제는 건물 내에 나무를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줄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의 건축계에서는 과학적으로 신뢰를 주는 건축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강을 증진시키고 최적화된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는 설계 기법인 '증거를 토대로 한 설계'(evidence-based design) 분야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설계 기법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물이 병원과 학교다. 병원이나 학교 건물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과 학생들의 경우 학업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무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다. 병원이나 학교 건물에 나무를 적용하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환자나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자연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회복이 빠르고,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추고, 고통을 절감시키며, 주의력과 생산성을 높여준다.
만약 병원이나 학교 건물이 병이 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야 할 병원이 건강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학교 건물에서 한참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카하시 다케시의 책 <<목재는 환경과 건강을 지킨다>>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목조와 콘크리트 학교를 비교해 조사한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목조 학교는 학생들의 집중력이 콘크리트 학교에 비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행성 독감에 의한 학급 폐쇄율은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행성 독감은 쌀쌀하고 눅눅한 콘크리트 환경에서 더 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난 30년간 콘크리트 학교에서의 결석률이 목조 학교와 비교해 볼 때 8배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아이들의 몸이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콘크리트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는 증거다. 콘크리트 환경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그런 이유로 인해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라는 감정이 유발되기도 하는 것이다.
목조로 된 건물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본 사람들은 위의 조사결과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나는 2003년부터 6년간 영국에서 건축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다양한 목조건물을 설계하고 감리를 위해 다양한 현장을 방문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캐나다 연방정부산하 목재관련 캐나다협회에서 6년간 목조건축 기술부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캐나다협회에서 근무할 당시 캐나다 현지의 목조건물들을 탐방할 기회를 많이 가졌었다. 목조 학교에서부터 도서관, 기숙사, 교회, 올림픽 경기장, 주택 단지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사용 용도도 다양한 건물들이었다. 목조 건물을 방문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였다. 물론 건물의 웅장함이라든지 디자인 콘셉트에 의해 감동을 받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내가 돌아본 목조건축물에서 느낀 대부분의 감정은 목재가 주는 즐거움이었다. ANN
최재철 에이앤앤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 건축가는 에이앤앤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