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건축의 형태를 만들고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영향력이 큰 요소이다"
김상태 교수의 전통건축 읽기, 불의 기능과 건축 : 선사시대의 건축
불. 인간에게 이롭기도 하지만, 반대로 해롭기도 한 존재. 불은 밤을 낮처럼 환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불은 날고기를 익혀 먹기 좋게 만들어주었고, 불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로운 존재이다. 반대로 불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없애는 해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불을 발견하였고,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구석기시대의 인간은 불만 있었지 제대로 된 도구조차 없었다. 동물을 피해 산과 나무에 피해 살았으며, 동물을 잡지 못하면 오히려 잡혀 먹는 신세가 바로 구석기인들이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도구가 세련되어지고, 불의 이용도 자유롭게 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점차 농사의 방법도 알게 되면서 농사짓기 쉬운 강가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땅을 둥글게 약 60~70cm정도 파고, 기둥과 보를 만들어 집의 뼈대를 만들었으며, 그 뼈대위에 서까래를 고깔모양으로 돌려 올리고, 그 위에 이엉을 덮어서 집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현대에서 스마트폰을 창조한 것 못지않은 대단한 창조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단한 집을 수혈주거라 부르는데, 움집이라고도 한다. 수혈과 움이란 땅을 판 구멍이란 뜻이다. 수혈주거의 바닥 중심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불을 때는 불 땐 자리가 있다. 불 땐 자리의 모습을 보자, 우선 불을 피울 자리에 10~15cm 정도의 판판한 돌을 둥그렇게 돌려서 세운 다음, 그 가운데 나무를 놓고 불을 피웠다. 판판한 돌을 주위에 까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추운 밤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불의 뜨거운 열이 닿은 판판한 돌은 돌 속에 열을 담아놓는데, 불을 끄고 난 후 그 열을 발산한다. 바로 돌의 잠열을 이용한 신석기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돌을 놓을 때 돌을 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세워 놓는 것인데, 그 각도가 90도가 아닌 불의 바깥 방향으로 45도 정도 벌려서 배열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불이 가지는 3가지 기능을 생각해보면 해답이 나온다. 우선 불은 추위를 이기게 해준다(난방:Heating). 둘째는 불은 음식을 익혀 먹게 해준다(취사:Cooking). 마지막으로 불은 어두움을 밝혀준다(조명:Lighting). 이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수용하려면, 돌의 각도는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돌을 평평하게 놓았을 경우, 조명의 기능은 좋지만 돌의 잠열을 이용한 난방과 취사의 기능은 좋지 않게 된다. 반면에 직각인 90도와 불의 안쪽으로 기울여 세웠을 경우, 취사와 난방은 좋게 되지만 조명의 기능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돌의 각도를 불의 바깥방향으로 45도 정도 기울여서 배치하면, 난방과 취사, 그리고 조명의 모든 기능을 소화하게 된다. 움집의 평면형태가 원형이 된 것도 중앙에 있는 불이 모든 면에 골고루 영향을 주기위한 최적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매우 과학적이면서 기술적인 신석기인들의 면모를 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불의 이용은 신석기 후기에 들어서게 되면서 점차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 불 땐 자리가 중앙이 아닌 벽체 근처에 발견되는 경우도 나타났으며, 평면의 형태도 원형과 사각형의 중간 모습이면서도 공간의 활용이 용이한, 모서리가 둥근 말각방형으로 변하였다. 신석기 후기의 우리 조상들은 공간의 분화를 점차 인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벽체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확실한 공간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렸던 공간의 분화는 신석기의 다음 세대인 청동기시대에서야 비롯되었다. 거실과 같은 공간에 작은 규모의 불 땐 자리와 저장고 근처의 주방과 같은 공간에 규모가 큰 불 땐 자리가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으며, 칸막이벽이 발굴을 통하여 발견되었다. 다양한 불의 기능을 이용하여, 취사와 난방이 분리된 공간의 분화가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럼 청동기 다음인 철기시대에는 어떤 공간의 특징이 생겼을까? 다시 취사와 난방이 결합된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집의 평면은 완전한 사각형이 되었는데, 벽의 4면 중 2면에 걸쳐 돌을 두 줄로 세우고 그 위에 넓은 돌판을 얹은 동굴형태의 ㄱ자 구들이 탄생하였다. 온돌의 초기 형태라 알려진 구들은 집안과 집밖에 입구가 만들어 졌는데, 집안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부뚜막이 있으며, 집밖에는 굴뚝이 있어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구들은 음식을 조리하는 취사 기능과 구들의 잠열을 이용한 난방 기능을 동시에 수용하였는데, 이 두 기능을 동시에 수용하다보니 조명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벽체가 지상위로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이와 같이 기단과 벽체,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재의 전통건축이 출현하기까지 불은 건축의 형태를 만들고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영향력이 큰 요소였던 것이다. ANN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김상태 Sangtae Kim 필자는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학과장)로 몸담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미국 UCLA International Institute, Center for Korean Studies에서 POST DOC.연구과정을 밟았다. 주요 논저로는 신라시대 가람의 구성 원리와 밀교적 상관관계 연구, 7ㆍ8세기 동아시아 2탑식가람의 생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노인행태와 주거설계기법에 관한 연구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