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맨위로

김상태 교수의 전통건축 읽기 7 목조건축의 혁명 - 공포

한국건축의 어려움에 대한 공포(恐怖)가 아닌 널리 공포(公布)되어야 할 아름다운 전통건축의 꽃이 아닐까?

등록일 2021년04월01일 08시4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김상태 교수의 전통건축 읽기 7 목조건축의 혁명 - 공포

한국건축의 어려움에 대한 공포(恐怖)가 아닌 널리 공포(公布)되어야 할 아름다운 전통건축의 꽃이 아닐까?

 

예로부터 인간은 건축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선사시대 수혈주거로부터 시작한 건축행위는 고대시대 이후 궁궐과 사찰을 조영하면서 주간 폭이 넓고 중층의 높은 건축물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현대에서도 100층을 넘어선 건축을 각국에서 경쟁하듯 짓는 것을 보면, 사람이 크고 높은 건축을 짓고자하는 것은 본능인가보다. 현대건축과 마찬가지로 전통건축 또한 건축물의 높이와 넓이를 넓히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 그 와중에 선택된 구조형식이 바로 공포이다. 건축가에게 건축학도 시절 한국건축사 수업 중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대부분의 많은 건축가들의 답변은 단연코 공포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건축사에 대한 어려움으로 공포(栱包)를 공포(恐怖)로 여기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그러면서도 주심포, 다포와 같은 공포의 형식은 잘 기억하지만, 공포가 하는 중요한 역할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사전에서 나오는 의미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전달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전통건축은 지붕의 무거운 무게로 기둥을 눌러 지탱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공포의 역할은 당연히 그 무게를 기둥으로 분포시켜 기초로 전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공포의 기능은 그 이외에 더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고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은 건축물은 기존의 다른 건축보다 높고 넓은 규모의 건축물을 만들고자 하였다. 아마 1차적으로 기둥을 높게 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공포의 모습은 아낙네가 양손을 양 옆으로 들어 무거운 광주리를 들 때의 모습과 같이 주두위의 첨차가 양 옆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러나 기둥만 높이면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지붕은 처마가 있는 경사지붕이다. 경사지붕의 역할은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시다시피 실내에 여름의 햇빛을 막고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오기 위함이고, 비와 눈이 들이치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사지붕의 처마 끝과 기둥 밑 초석의 중심을 연결할 때, 처마 안쪽의 각도를 30도 안팎으로 하여 구성한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름에 빛을 막고 겨울에 빛을 들여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기둥의 높이를 단순히 올리면, 처마의 깊이는 유지된 채 건물의 높이만 올라가 기둥의 밑동은 비에 노출되게 되고, 기둥이 썩게 되어 건물은 쓸모없게 되고 만다. 사찰에 가면 종종 기둥밑동이 새로운 부재로 갈아 끼운 흔적을 보게 된다. 바로 기둥이 썩어 건물이 무너지기 전, 기둥의 밑동만 새로운 나무로 갈아 끼운 동바리 기법이다.

 

기둥만을 올려서 건물을 높이고자 할 때, 기둥밑동이 썩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마의 깊이를 더 깊게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첨차가 좌우로만 구성된 초기 공포의 시대가 지나고 구조에 대한 이해와 기법의 발전에 따라, 고대의 건축가들은 첨차를 기존의 좌우 수평방향에서 기둥 열의 직각방향으로 내민 첨차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기둥이 높아지더라도 처마를 더 깊게 내밀어 30도의 처마각을 유지하기 위해 전후좌우의 첨차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1단의 첨차로는 그 각도를 만들 수가 없어, 2단의 첨차가 만들어져 점차 복잡한 형태의 공포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소위 주심포계 형식이라고 말하는 공포가 개발된 것이다. 주심포계의 대표건축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공포를 보면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형태의 공포를 볼 수 있지만, 사실 모서리 공포 즉, 귀공포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형태의 구성을 볼 수 있다. 건물 내부의 구조 또한 많은 부재의 조합으로 표현되었는데, 대들보와 도리의 수가 많아져 마치 복잡한 트러스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여전히 무거운 지붕을 받치는 구조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려후기 조선 초를 지나면서 공포는 한 단계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첨차가 3~4단까지 높게 구성되고, 기둥과 기둥사이에 간포가 놓이는 소위 다포계 건축이 발달하게 된다. 다포계 형식의 공포는 새로운 건축세계를 열었다. 다포의 공포는 기둥열의 직각방향인 외부로 첨차의 수가 늘어나 지붕을 더 높게 하였으며, 처마 또한 바깥방향으로 더 길게 내밀 수 있게 하였다. 처마가 깊게 구성되고 처마 끝의 지붕무게를 충분히 지탱하게 되자, 건물내부의 대들보와 도리 수가 줄어드는 등 구조가 간략하게 되고, 공포의 첨차 끝이 장식화 되어 입면의장이 더욱 화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공포는 전통건축의 건물높이를 높이기 위한 필요한 요소였으며, 건축물의 구조를 간략하게 한 매우 중요한 구조재임을 알 수 있다. 전통건축 전공자들이 한국건축 강좌에서 목소리를 높여 그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바로 공포가 전통건축의 구조적, 의장적 발전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이다. 전통목구조 발전의 혁명적 발전을 가져온 공포. 이제는 공포를 이해함에 있어, 한국건축의 어려움에 대한 공포(恐怖)가 아닌 널리 공포(公布)되어야 할 아름다운 전통건축의 꽃이 아닐까? ANN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김상태 Sangtae Kim 필자는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로 몸담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미국 UCLA International Institute, Center for Korean Studies에서 POST DOC.연구과정을 밟았다. 주요 논저로는 신라시대 가람의 구성 원리와 밀교적 상관관계 연구, 7ㆍ8세기 동아시아 2탑식가람의 생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노인행태와 주거설계기법에 관한 연구 외 다수가 있다. www.archiskim.com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