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21> 건강한 집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
만족스러운 수준의 자연광(햇빛)이 머무는 집, 건강한 집의 필수조건(Barometer)은 반드시 충족돼야
햇빛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건강과 웰빙에 꼭 필요한 요소가 자연이 주는 광선, 햇빛이다. 낮 동안의 빛, 밤의 어둠은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밤 동안 수면의 질을 높여 주는 것 또한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밤에 숙면을 위해서는 캄캄한 환경이어야 좋다. 저녁에는 조도를 낮게 하고 밤에는 암막 블라인드로 방을 어둡게 하면 수면의 질도 높아진다. 낮 동안 최고로 높아진 자연광 레벨은 업무, 학업과 같은 수행능력과 감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침에 들어오는 자연광은 처지기 쉬운 감정을 끌어올리고, 수행능력을 높이며, 체내 시계(biological clock)를 잘 맞춰준다. 자연광에 적절하게 노출되면 생체리듬 곡선이 정상궤도로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자연광과 집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벨룩스(Velux) 그룹에서는 '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상징물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60%는 '자연광'이라고 답했다. 주관적일지 모르지만 내가 똑같은 설문지를 받았다고 해도 나의 대답 역시 같았을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 하겠지만 나는 하루 종일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살고 있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짓고 이사 오기 전까지는 아파트 6층에 살았었다. 굳이 아파트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만 두 집에서 느끼는 안락함의 차이는 분명히 크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질 위험이 훨씬 높다고 한다. 시애틀은 미국 내에서 비가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우기는 이듬해 초봄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에는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가 몇 개월 간 지속된다. 이런 점에서 단기간에 내리고 그치는 우리나라의 장마와는 많이 다르다. 이 시기에는 여름에 비해 해가 짧아진다. 그나마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지속되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도 짧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시애틀에는 계절성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우울증 때문에 기분이 위축되고, 잠이 많아지며, 식욕이 증가하면서 무기력 해지는 증상을 호소한다. 전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매년 상위에 올라있는 캐나다 밴쿠버의 경우도 시애틀과 비슷한 우기가 있다. 몇 년 전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달간 해를 한 번도 못 봤다고 내게 불평 섞인 얘기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에 쾌활한 성격의 친구였는데, 한 달간 매일 비가오니 ‘기분이 정말 위축되고 우울증 증세까지 생긴다’며 햇빛이 그립다는 하소연을 했었다. 햇빛을 못 본다는 것은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우울증의 치료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자가 치료 방법은 ‘빛 치료’, 즉 자연광을 이용하는 치료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의학적 증거들도 자연광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혜택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30분간 1만 럭스(lux) 정도의 빛을 쬐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을 예방되거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럭스(lux)는 조도, 즉 밝기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맑은 날의 햇빛은 밝기가 5만에서 10만 럭스 정도 된다고 한다. 흐린 날은 최대가 1만 럭스 정도다. 그러니 흐린 날 바깥에만 있어도 1만 럭스의 빛을 쬐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햇빛은 우리의 감정을 건강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후두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에 노출될 위험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과 정신적인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바로 햇빛이다. 햇빛은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자연광을 잘 계획해서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면 업무 생산성이 15%정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햇빛이 부족하면 수면장애, 스트레스, 비만, 피로 등을 야기 시킬 수 있다.
그러면 집에서 체감할 수 있는 럭스는 어느 정도일까? 집에서는 밝은 실내라고 할지라도 500럭스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광을 최대한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사실상 실내에서 충분한 빛에 우리 몸이 노출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벽에 설치된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끌어 들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실험에 의하면 벽 창문을 통해서 끌어들일 수 있는 빛은 약 30% 정도라고 한다. 그마저도 창문 주변에서나 그 정도지 창문으로부터 일정거리 만큼 떨어진 곳은 여전히 어둡다. 창문으로부터 멀어 질수록 빛은 힘을 잃고 만다.
길이가 4.5미터고 한쪽 벽에 창문이 있는 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창문 주변의 밝기는 30%정도지만 반대쪽으로 갈수록 밝기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4.5미터 거리에 도달했을 때 밝기는 2%로 수치가 확연히 떨어진다. 실의 중간 위치에 인공조명을 설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빛의 밝기가 낮기 때문에 인공조명의 도움이 없이는 밝은 낮이라도 어둡게 느껴지지 때문이다.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활기찬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반면 어두운 실내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기분이 위축될 확률이 밝은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비해 2배나 높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37%의 유럽 사람들은 집 거실에 햇빛이 들지 않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일상에서 좀처럼 활력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어두운 환경이 햇빛이 풍부한 환경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아마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활력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붕에 설치된 창문을 통해서 실내 깊숙이 빛이 들어오고 있다>
자연광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모든 벽을 유리로 만들 수는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공조명으로 필요한 밝기를 얻는다 해도 우리들의 건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햇빛을 쪼이려고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자연광이 집의 실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최근 새로운 접근법을 가지고 집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햇빛을 최대한 끌어들이면서 안락함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건강한 집짓기 방식이다. ANN
최재철 에이앤앤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 건축가는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