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교수의 전통건축 읽기 4, 한옥을 자로 재다 : 옛 척도
Prof. Sangtae Kim’s Learn our traditional architecture
한옥을 자로 재다 : 옛 척도
20여 년 전, TV에서 건축가의 모습을 한 유명한 배우의 CF장면이 있다. 제도판 위에서 삼각 스케일 자로 열심히 도면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이 CF는 많은 고등학생들에게 건축가의 꿈을 꾸게 하였고, 건축과는 공대에서 소위 가장 잘나가는 인기학과가 되는데 일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스케일 자로 표현되는 척도(尺度)! 척도의 사전적 의미는 자로 재는 길이의 표준, 혹은 평가하거나 측정할 때 의거할 기준이다. 척도는 사물이나 사람의 특성을 수량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를 위해 체계적인 단위를 가지고 그 특성에 숫자를 부여한 것이다. 즉 숫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물질을 길이·부피·무게로 표현하기 위한 도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에 있어서 척도는 어떠한가? 건축을 전혀 접하지 못한 건축대학의 신입생들이 처음 배우는 것은 아마도 척도일 것이다. 딱딱한 삼각 스케일 자로 여러 스케일로 도면을 그리느라 애썼던 옛 생각이 종종 기억나곤 한다. 선배들은 스케일 자를 애인처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으며, 스케일 자에 홀더나 잉킹 펜을 대고 그리면, 엄청 혼나는 일이 빈번했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중요시했던 스케일 자는 미터법, 즉 1mm, 10cm, 1m 등으로 구성되는 기준의 척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미국에서 사용하는 스케일 자는 인치(inch)와 피트(feet)로 구성되었다. 1 feet가 30.48cm인 것을 보면, 우리의 척도와 미국의 척도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Feet법을 보면, 재미있는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미터법이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1960년대 본격적인 미터법의 통일이 있기 전 우리는 중국을 중심으로 사용된 척 혹은 자(尺)라는 길이의 단위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1자는 30cm전후로 사용되며, 영미권에서 사용된 Feet법과 그 길이가 매우 유사하다. 그것은 척도의 기준을 신체의 일부분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Feet법이 명칭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신체 중 발을 그 기준으로 하였는데, 옛 길이의 척도인 자(尺)는 손, 팔, 키 등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주로 사용했던 길이의 척도는 1푼(分)을 기준으로, 10푼이 1촌(寸), 10촌이 1척(尺), 10척이 1장(丈)으로 사용하였으며, 척도가 쓰이는 용도에 따라 건축용 척도는 영조척(營造尺), 옷감을 잴 때 사용하는 척을 포백척(布帛尺), 악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척도를 황종척(黃鐘尺), 토지측량을 위한 양전척(量田尺), 종묘나 문묘의 제사에 사용하는 제사용기 제작을 위한 조례기척(造禮器尺) 등으로 분류하여 사용하였다.
건축에서 주로 사용했던 영조척은 각 시기별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척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든 척도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했던 척도는 대표적으로 35.6cm전후의 고려척(高麗尺)이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했던 고려척은 동위척으로도 알려졌지만, 중국에서의 동위척과는 다르다. 고려척이 일본에서도 사용하였음은 이미 알려진 정설인데, 이를 통해 척도가 동아시아의 건축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만든 척들을 보면, 주나라에서 만든 20cm내외의 주척(周尺), 23.5cm전후의 한척(漢尺), 30cm전후의 동위척(東魏尺), 25cm전후의 남조척(南朝尺, 唐小尺), 29.8cm전후의 당척(唐大尺), 31전후의 송척(宋尺) 등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중국의 척도들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졌을 때 사용되었는데, 한척과 남조척 그리고 당척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고대시기의 유적지를 살펴보면, 여러 척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유적지가 여러 시대를 거쳐 조영이 되어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지만, 비슷한 시기의 유적과 유물에서 각기 다른 척도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동 시기에는 하나의 척도만이 사용된다는 상식에 어긋나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은 복원계획을 할 때, 조영당시의 척도를 찾기에 장시간의 연구를 할애한다.
조선시대는 31cm전후의 길이를 가진 영조척을 사용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30.3cm의 곡척을 사용하였으며, 이 척도들은 현재의 전통건축과 가구에 사용하는 자(尺)의 기준이 되었다. 전통건축에서 집의 평면을 계획할 때, 규모에 따라 칸의 폭(기둥과 기둥사이)을 6척~12척으로 하였다. 그렇기에 목수는 12척으로 된 나무 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당시에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한 공간의 규모를 고려하여 적용한 결과이다. 20여년전, 필자가 주택과 아파트를 설계할 때 방의 폭을 보통 2.4m~4.5m로 하여 계획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이는 가구의 치수가 자(尺)단위로 되었기에 30cm를 모듈로 하여 그 배수로 계획하였던 것이다.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척도가 미터법으로 변하였고 내부 공간의 규모 또한 변화하였으나, 주거건축을 계획할 때에는 여전히 자(尺)단위의 개념이 상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척도는 시대가 변하면서 당시의 모습을 반영하여 발전한다. 현재 우리는 미터법을 그 척도의 기준을 삼아 사용한다. 그러나 자(尺) 개념의 옛 척도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면, 옛 고대시대에 고려척과 당척이 혼용되어 나타난 유적과 유구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앞으로 건축시공 시, 사용된 자와 도면 등 건축에 대한 역사와 척도를 알 수 있는 자료를 기초에 넣어 보관하여 후손에게 전해준다면, 이러한 척도의 혼용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을까하는 제안을 해본다. ANN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김상태 Sangtae Kim 필자는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학과장)로 몸담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미국 UCLA International Institute, Center for Korean Studies에서 POST DOC.연구과정을 밟았다. 주요 논저로는 신라시대 가람의 구성 원리와 밀교적 상관관계 연구, 7ㆍ8세기 동아시아 2탑식가람의 생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노인행태와 주거설계기법에 관한 연구 외 다수가 있다. www.archis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