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12> 단독주택, 로망과 실제는 다르다!
단독주택을 버리고 아파트를 선택한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주거문화를 지배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 한다.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언젠가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아담한 집을 짓고 살리라’는 꿈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마당에서 뛰어놀고, 주말이면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불을 피우며 바비큐 파티를 하고 밤이 늦게까지 수다를 떨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상인가. 상상만 해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는 즐거운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여유롭다.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 부모들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주택에 살면서 아파트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아파트로 삶의 터전을 다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아파트에서의 생활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많지만 단독주택에 살면서 그 만큼 감당해야 할 대가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둘 다 얻으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모두 다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단독주택에서 살면서 사람들은 삶의 가치‘에 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단독주택에 살면서 잃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잃는 것도 아닐 테지만. 굳이 잃는 것을 표현하자면 아마도 집을 유지관리 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약간의 신경 쓰기 정도가 아닐까싶다. 때가 되면 잔디를 깎아 주고, 정원을 가꾸고, 마당 한 편에 만들어 놓은 텃밭을 조성하는 정도. 사실 이런 일들은 신경이 쓰이고 육체적으로 작은 노동력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집의 가치뿐만 아니라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이외에도 아파트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빈번히 발생할 수도 있기는 하다. 뜨거운 물이 갑자기 안 나온다든지, 수도배관에서 물이 샌다든지,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한다든지 등등. 이런 일들은 단독주택에 사는 한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할 일이다. 아파트에서는 전화 한통이면 관리업체에서 대부분의 일을 다 처리해주기 때문에 관리적인 측면에서의 불편함은 거의 없다.
단독주택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아파트를 찾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파트에서의 편리함이 자꾸만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트로 기울게 된다.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기 위해 단독주택으로 왔건만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더 바쁘고 피곤한 것 같다. '이런 생활을 하려고 단독주택으로 온건 아닌데'라고 후회가 들기도 한다. '불편한 단독주택은 뭐 하러 가냐'라며 얘기하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 다시 맴돌기 시작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더 늦기 전에 빨리 정리하고 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진다. 단독주택은 팔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자 어떤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같은가? 단독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은 커다란 사건을 경험하거나 너무 견디기 힘든 무엇인가 때문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지는 한 분이 단독주택 생활을 청산하고 30층 아파트 맨 꼭대기 층으로 이사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관리비가 너무 나온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할 만한 고급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간 이유가 비싼 관리비 때문이라니. 고급 단독주택에 살고 있을 정도라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충분히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돈이 유지관리 비용으로 들어가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겨울이면 난방을 위한 가스비용이 여름이면 냉방으로 인한 전기세가 아주 많이 나왔다고 한다. 비용을 줄여보겠다고 겨울에 보조 난방 기구를 사용하고 창문에 단열 필름을 붙이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냉·난방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로 이사 오니까 좋으세요?“라고 내가 물었더니 ”관리비가 훨씬 적게 들고 신경 쓸게 없다“며 단독주택에서 빠져 나온 것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물론 살다보면 전에 살았던 단독주택이 생각나기도 하겠지만 지금 아파트 생활을 나름 즐기고 있다.
집을 짓자마자 아파트로 이사를 간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파트를 살다가 경기도 용인에 120m2(약 40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지었다. 집은 큰 문제없이 완공되었고 이사 갈 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건축주는 다지어진 집을 보고 난 후 바로 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집에 큰 문제가 있지도 않은데 살아보지도 않고 이사를 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건축주는 바쁜 일 때문에 공사를 시작해서 완성하기 전까지 한 번도 현장에 가서 시공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완공 후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둘러보는데 공간이 너무 작게 느껴지더라고요” 건축주는 면적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공간이 작은 느낌을 받은 건축주는 그 즉시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를 알아보고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분명 설계과정을 통해 필요한 실의 면적과 집 전체 면적을 협의하고 확인했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건축주에게 설계도면은 그저 흰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설계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건축주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집을 몇 번이고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설계와 관련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소위 디자인을 잘 한다는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는 설계자에게 거의 전권을 이양해 설계하도록 했다. 최종 설계가 완성되었고 건축주도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누가 봐도 멋진 디자인 하우스를 완성했다. 그런데 정작 살아보니 설계도면에서 보고 설명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일반인들은 공간감이 없다보니 도면상 배치된 실면적과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공사가 진행되면서도 그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이 집을 와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곳에 살아서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불편하다. 집모양이 '브이'자 형태로 생기다보니 실의 기능적 분리는 잘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용 못하는 공간, 즉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얘기할 수 있는 거실도 턱없이 좁다. 소파 하나 놓을 공간도 부족해서 손님들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주방에 놓은 6인용 식탁에서 담소를 나누게 된다. 사방 벽면에는 커다란 창문이 설치되어 있어 TV와 소파 배치가 애매해 소파에 앉으면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TV를 시청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만족스럽지만 집의 기능적인 부분은 만족을 채우지 못했던 전형적인 사례다. 디자인을 더 강조했는데 기능적인 면에서는 불편하다.
디자인과 기능 중 어떤 것을 강조해야 할지는 건축주의 성향에 달려있다. 이 건축주는 이번 집짓기를 경험삼아 다시 곧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이번에 지으면 디자인 요소는 최소화 시킬 거라고 얘기한다. “다음에 집을 지으면 직사각형으로 집의 형태를 만들고 하나의 공간처럼 넓게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건축주는 디자인이 주는 요소도 만족감을 주지만 살기에는 기능에 충실한 집을 짓는 것이 훨씬 만족도가 높을 거라는 얘기로 아쉬움을 남겼다.
디자인은 '삶 속의 다양한 의미를 실체화'해야 한다. 집짓기에 있어서 사는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디자인은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스페인의 건축가 알베르토 캄포 바에자(Alberto Campo Baeza 1946- )는 집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닌, 자연을 느낄 수 있고, 건축의 공간성이 정신을 고양 시키는 단순하고 간소한 집, 나의 영혼이 잠잠하며 고요히 묵상하며 쉴 수 있는 안식처라야 한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