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CKS in the Concrete from the MMCA Collection_ 균열 展…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몸과 믿음이라는 세부 주제를 통해 한국의 예술가들이 세상과 마주하며 실험하고자 했던 다양한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전이 내년 4월 29일까지 과천관에서 마련된다. 이번 균열전은 20세기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하는 미술관 측의 의지가 표현된 전시다. 단단하게 구축된 권위와 강요된 질서에 도전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한 예술가들의 창조적 의지를 한국의 사회, 문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다시 되짚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균열전은 크게 2부로 나누어 중장기적으로 전시된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몸과 믿음이란 소주제로 진행되는 1부 전시는 94점의 소장품을 통해 신체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구속되는 지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몸은 작가들의 손에 의해 베이거나 왜곡되기도 하고, 생소하면서도 위험한 존재로 거듭난다. 우리 주변을 에워싸는 사회적, 문화적 관습 역시 작가의 개성적인 시각을 통해 부정되기도 하고 낯선 풍경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이렇듯 전시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남기고 균열이 깊을수록 새로운 만남이 주는 영향력이 더욱 크다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미인도, 1977, 화선지에 채색, 29x26cm
미술관 측은 “우리는 미술작품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소위 ‘명작’이 선사하는 깊은 감동인가? 아니면 세파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치유?”라는 질문을 통해 균열의 중심에 접근한다. 근현대미술 작가들이 은밀하거나 공공연히 균열을 핵심 가치로 삼았음을 알려주고, 견고한 토대에 난 균열의 세계는 더 이상 익숙했던 그 세계가 아님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정해진 잣대로 인식해 온 세계가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은 항시 유쾌한 것은 아니다. 때론 성가시고 어색하며 불편하기도, 혹은 실망과 짜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을 통해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들이 품고 있는 균열의 속내를 차별화된 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시 주제인 몸의 균열은 위계질서의 아성에 몸을 부딪쳐 균열을 만들어 간 미술가들의 상처입고, 뒤틀리고, 생경해진 몸들을 보여준다. 전시된 저마다의 몸들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 감동적지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지도 않는다. 작가들의 자의식에 베이거나 미래적 비전에 왜곡되기도 하고, 집단적인 관념을 벗어나면서 생소하고 때론 위험한 존재가 된 몸인 것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호시탐탐 우리에게 균열을 일으킬 궁리를 한다.
김영진, 1978-2, 1978,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한운성, 박제된 울산바위, 1993, 캔버스에 목탄, 아크릴릭, 유채, 227x486cm
또 다른 전시 주제인 믿음의 균열은 인간은 결코 담론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 대다수가 철석같이 믿는 근거 없는 믿음을 통해서 인류는 서로 협력하고 서로 싸우면서 세상을 만들어왔음을 설명한다. “전시실의 작품이 우리에게 진실을 외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우리가 당연하게 실체처럼 받아들이던 국가나 종교 등의 담론이나 혹은 일상적인 환경들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다면?” 이런 상상을 기반으로 갑자기 낯설어진 풍경 앞에 서 있고 그 낯선 만남이 우리에게 균열을 남긴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 상처가 깊을수록 새로운 만남의 잔향도 함께 깊어질 것이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설치, 영상, 사진, 이벤트 등 실험적인 미술을 전개한 작가 김영진은 1978년 이강소, 박현기, 최병소 등과 대구 K스튜디오에 모여, 비디오카메라 1대를 이용해 각자 영상을 촬영했다. 작가는 여기서 신체의 여러 부위를 유리판에 접촉시켜 접촉된 부분을 펜으로 그렸다. 이때 촬영한 영상을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에 출품하였고 작가는 2~3년후 12개의 채널로 편집해 선보였다. 1930년대 한국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시인 이상의 내면을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시니컬하면서도 우울한 시인 이상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분방한 필치의 굵은 선, 대담한 생략과 면 위주의 구성, 색채의 강렬한 대비가 특징이다.
이불, 사이보그W5, 1999, 플라스틱에 페인팅, 150x55x90cm
공성훈, 개, 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x181.8cm
백남준의 로봇 연작 중 하나인 ‘하이웨이 해커’는 특정한 인물이 아닌 현대 혹은 미래 사회의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이웨이는 실제의 고속도로보다는 가상적인 네트워크 상의 소통과 더 가까운 개념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통신상의 새로운 인간형 해커를 모니터와 기계 부속품, 나팔 같은 형상의 악기로 표현했다. 이불의 사이보그 시리즈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사이보그, 즉 폭력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힘과 여성(특히 미소녀)에 대한 잠재적 욕망을 함께 지닌 사이보그를 연상시킨다. ‘사이보그 W5’는 여성 신체의 일부를 변형시키는데 사용되는 성형 인공물인 실리콘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작품은 사이보그를 조정하는 주체가 주로 남성이며, 신인류조차 여성성은 남성 위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1970년대 중반부터 줄곧 인간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정복수는 작품 속에 인간들은 대부분 괴기스러운 괴물이나 짐승의 모습 같다. 이는 인간의 애처로운 본성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애정의 표현이다. ‘생명의 초상’은 정복수의 비교적 초기작으로 작가의 거칠고 생생한 표현력이 잘 드러나 있다.
백남준, 하이웨이 해커, 1994, 90x83x60cm
공성훈의 ‘개’는 자신의 작업실이 있던 벽제를 왕래하면서 마주친 독특한 풍경들을 포착한 ‘벽제의 밤’ 연작 중 하나이다. 화장터를 연상할 수 있는 벽제 지역의 정서와 풍경에는 독특한 면에서 작가는 낮이 아니라 해가 저물고 인공적인 조명이 밝혀지면서 본 모습을 드러내는 더욱 더 모순적인 풍경에 고정된다. 연작 ‘개’는 개와 관찰자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처럼 어둠이 가로질러 있고, 개는 섬처럼 유배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개는 식욕을 충족시키고 있고, 개의 밥그릇이나 붉은 플라스틱 바가지 등 자연적인 질서와 관계없이 그 빛에 호응하는 모든 물체들을 부각시킨다. 이는 오해와 왜곡이 가득한 시각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숲 역시 자연성과 인공성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묘한 분위기의 조성에 기여한다. 한운성의 ‘박제된 울산바위’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작가의 이율배반적인 작품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빚어내는 원근법적 공간은 단지 관객의 인식 속에 존재할 뿐, 실제로는 비좁은 평면 속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있다. 작가의 복잡한 그림 이면에는 원본이 없는 사본이라는 현대문명과 이미지의 소비에 대한 지성적인 비판이 비수처럼 숨겨져 있다. 최근 법원의 진품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립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미인도’는 전문가들조차 실제로 이 작품을 육안으로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전시를 통해 공개된 ‘미인도’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공공의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결정되었다. 특정 작품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균열을 낼 수 있는가에 관한 적극적인 시도인 셈이다. 미술관측은 이런 균열을 통해 미술작품의 정통성에 대한 관념과 실제 사이의 틈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묻는다. 1998년 초 ‘사진 조각’이라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며 미술계에 등장한 권오상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소재로 한 ‘트리’를 통해 모두 사진으로 재현된 표면적인 허상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평등함을 보여준다.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캔버스에 유채, 62x50cm
이번 균열 전은 MMCA 팀플(팀 플레이)이라는 전시 연구모임을 통해 진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시도한 이 방식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참여자가 원하는 커리큘럼을 구성하여 연구와 전시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 전시와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며 관람객이 문화 생산자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한편, 2018년부터 2019년으로 이어지는 2부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새겨진 균열을 다양한 시각으로 되짚어보게 된다. 전통, 예술, 현실이라는 소주제로 엮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이후 한국의 예술가들이 세상과 마주하며 실험하고자 했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김미현·박정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_ 강승완 전시1과장, 임대근 학예연구사
자료_ MM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