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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와 사실정신으로 구현한 북한산 예찬

김석환의 북한산

등록일 2021년01월18일 19시3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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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의 북한산

“김석환의 북한산 그림은 발로 쓰는 운문이자, 600여년을 서울과 함께 한 역사적인 실체로서의 산에 대한 헌사이다.”

 


북한산성전경 한지에수묵 2020년 1490x1050mm

 

취미로 혹은 특별한 동기에 의해 시작한 일이 본업이 되는 일이 흔치 않다. 동기야 어찌됐던 무슨 일이든지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우뚝한 존재가 된다. 예술의 경우 취미가 본업이 되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처럼 어설프게 시작하여 꾸준한 노력과 경륜이 쌓이다 보면 어엿한 화가로서 일가를 이루는 일도 더러 있다. 혹여 남과 다른 시각에 의해 촉발된 전대미문의 작업이라면 개별적인 조형세계를 궁극으로 여기는 회화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김석환은 건축가로 활동하는 현역이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깊이 화가의 길로 빠져들어 있다. 이미 10여 차례에 달하는 개인전이 말해주듯이 중견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 공모전이나 그룹전이 아닌 개인전을 중심으로 화단활동을 하는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독립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근래 미술계의 경향과 일치하는 검정색 일색인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오해를 받을 소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가 단색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지 10년도 넘었다는 점에서는 시류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1년,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부터이다. 20세에 그의 작품집을 보고 건축가의 길을 확신하게 된 그는 르 코르뷔지에가 그린 그림들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게 되었고 그처럼 회화적 소양을 갖지 못한 것을 염려하던 차에 주말 여가를 이용해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후 1995년과 2005년 두차례 수채화, 유화 등 채색화 위주의 개인전을 개최한 후부터는 전통건축 답사 등을 하며 마주 대하는 장면들을 스케치하는 것이 주류가 되었고 2008년 영풍문고에서 한국전통건축드로잉전을 여는 등 점차 단색의 데생작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펜이나 붓펜과 같은 필기도구 및 데생 작업에 쓰이는 목탄으로 작업한다. 그림의 소재 또는 대상은 북한산을 중심으로 한 한양도성과 연관된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그림은 펜화이기도 하고 붓펜화인가 하면 목탄화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두가 검정색 그림이라는 사실이다. 유채색이 배제된 무채색으로서의 검정색 그림이라는 점에서는 수묵화와 유사성이 있으나 한지가 아닌 수채화 종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물론 수묵과 모필이 아닌 펜과 붓펜으로 작업하니 수묵화와의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다. 다만 검정색 그림이라는 점에서는 수묵화로부터 멀지 않다.


 

 

화가의 길에 깊이 발을 디디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건강을 다지기 위해 북한산을 오르다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들을 평소 습관대로 스케치해온 것이 화가의 길로 인도했다. 산행 중 펜을 들고 조그만 화첩에 마주치는 산세의 풍광들을 스케치하다가 점차 자신도 모르게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그림의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건축가이면서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이자 화가라는 명칭이 말하듯이 1인3역을 하는 셈이 됐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건축가다운 일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실사로만 이루어지는 치밀한 묘사기법은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건축설계와 일치하는 바가 있기에 그렇다. 실사이기에 모든 작업은 오로지 현장에서만 이루어진다. 실상과 마주하면서 그려야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미적 감흥을 온전히 받아쓸 수 있는 까닭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북한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연히 나서면서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그동안 산행을 통해 눈과 마음에 익혀온 북한산을 해부하듯이 속속들이 밝혀, 장엄한 산세와 더불어 거기에 은닉된 서사시적인 이미지를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을 품에 안고 있는 북한산은 그 자체로 조선왕조 500년에 이어 근현대 100여년을 보태 600여년이라는 역사와 함께한다. 그처럼 긴 역사를 증언이라도 하듯 여전히 한양도성을 껴안고 있는 북한산의 진솔함에 마음이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는 사실정신을 중히 여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태지 않고 북한산 그 실체만을 형용하는 것만으로도 회화적인 가치는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철저한 사실주의 정신이야말로 작업의 견인력이다. 그러기에 모든 작업은 산행을 통한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5미터가 넘는 대형작품의 경우에는 여러 장의 수채화 종이를 이어붙이는 형태로 제작된다.

어쩌면 대형작품도 현장작업이 가능한 것은 펜이나 붓펜과 같은 간편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묵산수의 경우에는 얇은 한지와 수묵과 모필이 필요하니 현장작업하기가 까다롭다. 반면에 그의 경우는 두터운 수채화 종이에다 붓펜만 있으면 된다. 현장작업을 고수하는 그로서는 편리성이라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건축설계가 손에 익은 형편에서는 부드러운 모필보다는 붓펜이라는 도구로 작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초기에는 펜을 즐겨 사용했는데, 소품 위주였을 뿐더러 소지하기에 간편했기 때문이다. 작은 스케치북에 스케치하기로는 손에 익은 펜이 효율적이었으니 다른 도구를 염두에 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림 크기가 점차 커지면서 펜을 대신할 수 있는 붓펜이 필요했다.

 


 

북한산 그림은 이와 같은 기반 위에서 전개된다. 기존의 수묵화나 연필 스케치 형식의 작업과 다른 재료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붓펜을 도구로 사용하는 회화양식을 개척한다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펜화는 그 역사가 오래고 또 보편화된 양식인데 반해 붓펜화는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필기도구이다. 붓펜은 수묵산수화 작가들도 더러 이용하는데 산행에서의 스케치나 밑그림을 그리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붓펜이 중심이고 붓펜 작업이 쌓이다보니 붓펜화라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붓펜으로 5.4m에 달하는 대작을 완성했다. 당연히 현장작업이었다. 이처럼 대형작품이 쌓이게 되고 또 전시회가 이어지면서 붓펜화라는 독립적인 회화양식으로서의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됐다. 수묵산수화와는 시각적인 이미지에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붓펜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크기와 그로부터 나오는 표현기법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근래에 제작된 대형작품은 현장작업인데다 모필보다 현저히 작은 탓에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다. 그림보다는 글씨 쓰는 용도인 붓펜은 그 크기가 작아 대형작품의 경우에는 굵은 선을 만들어낼 수 없다. 붓펜을 뉘어서 그린다고 할지라도 선의 크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대작에 승부를 걸고 있다. 작품적인 성과 및 작가적인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대작에 그 기준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작의 경우 한 작품으로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조형적인 요소가 고려되고 또 그를 통해 작품적인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대작일 경우에는 화면경영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작가적인 조형감각을 확인하고 평가하기가 수월하다.

대작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도 사방으로 드넓은 산자락을 드리우는 북한산의 전체 모습을 담으려는데 있었다. 따라서 북한산 전경을 담으려면 화면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작은 화폭으로는 북한산의 기세는 물론이려니와 줄지어 선 연봉과 주능선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계곡이 만들어내는 공간적인 깊이를 한데 아우르기 난망이다. 그는 여기에서 시점이동이라는 방법으로 북한산을 파노라마처럼 펼침으로써 한눈에 그 전모를 살피고자 했다. 오직 실사를 윤리성으로 삼는 그로서는 대형 화폭을 펼쳐놓기 어려우니, 궁여지책으로 여러 장의 종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산은 하나의 봉우리로만 이루어진 산이 아니라 백운대를 최정상에 두고 인수봉, 만경대로 이어지는 연봉과 그 아래로는 국망봉, 노적봉이 자리하며, 그에 따른 크고 작은 산자락이 모여 하나의 산을 형성하는 집체적인 형태의 산이다. 뿐만 아니라, 백운대 서쪽으로는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형성된다. 주능선에서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과 형제봉능선이 차례로 이어지는가 하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듯이 북한산은 장황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그 모양을 온전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 전체적인 형태를 개략적으로나마 담으려면 응당 대형 화폭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시작된 대작은 “지축동에서 본 북한산 전경, 540cm×66cm, 2018년”을 비롯하여 “불암산에서 본 북한산 전경, 182cm×33cm” “노고산에서 본 북한산 전경, 260cm×46cm” “남산에서 본 북한산 전경, 260cm×46cm” “원효봉에서 본 북한산 내부 전경, 360cm×66cm” “의상봉에서 본 북한산 전경, 294cm×59cm, 2017년), 여성봉에서 본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 294cm×59cm” “칼바위 능선에서 본 북한산 전경, 294cm×45cm” “사모바위에서 본 의상능선과 북한산 정상” 등이다.

이들 대작은 단순히 크기를 가지고 논하기 전에 북한산이라는 거대한 산 그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함으로써 그 산세가 품고 있는 웅혼한 기상을 살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및 양주시 일부까지 끌어들이면서 78.5㎢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장악한다. 어느 면에서 북한산 그 전모를 그림으로 옮겨보겠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점차 외곽으로 확장됨에 따라 북한산 주변 땅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려한 모습의 산이 가려지는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됐고 화폭에라도 담아두자는 조급함이 대작 제작을 촉발한 것이다. 5.4m에 달하는 “지축동에서 본 북한산 전경”은 이러한 안타까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검정색 단색이니 얼핏 보면 수묵화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수묵화의 선염이나 발묵 또는 파묵과 같은 기법이 보이지 않는다. 종이와 물과 먹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을 이용한 전통적인 표현기법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냥 담백하고 건조하게 보이는 검은 필선과 무수한 점이 모여 산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기존의 수묵산수화에 익숙한 눈에는 싱겁게 보일 수도 있으나, 작은 점과 선의 집합이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수묵산수화에서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심미세계라고 할 수 있다.

수묵의 윤택함과는 다를지언정 담백한 점과 필선이 무수히 반복되는 가운데 서서히 산의 형체가 드러나는 상황은 시각적인 즐거움 너머의 세계를 암시한다. 북한산을 그토록 예찬하면서도 미사여구를 아끼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포진시킨다. 어떻게 보면 설채, 즉 채색을 더하거나 명암을 통한 입체감 표현 따위는 잊어도 좋을 만큼 진지하고 진솔하게 전개되는 필치야말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의 웅건함 그 실체에 가장 가까운 표현일 수도 있다.

공간적인 깊이 즉 심도문제는 적묵법과 유사한 농담의 차이로 표현하고 있다. 근경은 짙고 두텁게, 원경은 옅고 얇게 표현함으로써 원근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짙고 옅게 표현하는 방법은 선과 점이 겹쳐지는 차이를 말한다. 붓펜은 오직 한 가지 짙은 농도의 검정색일 뿐이므로 애초에 농담의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능선과 계곡의 표현에서도 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붓질이 겹쳐지는 횟수에 따라 명암이 형성될 따름이다.

 


 

이러한 붓펜의 특징으로 인해 어떠한 표현기법을 구사하더라도 풍부한 시각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숲이나 나무 또는 바위의 형태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나무와 숲 그리고 바위가 동일한 존재감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도 발묵이나 파묵과 같은 수묵화의 기법과 달리 담담하고 소소하며 맑게 느껴지는 화법에 기인한다. 이는 순전히 붓펜만이 가지고 있는 표현적인 특징이다.

물론 기존에 제작된 소품의 경우에는 한양도성과 관련한 건축물, 즉 북한산에 자리한 도성의 문이라든가 나무, 숲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은 모두 근경으로서의 사실묘사를 기반으로 한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북한산의 실체를 조망하면서 큰 산을 이루는 부분적인 풍경을 세심히 관찰하여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산이라는 거대한 산에 대한 형용이란 것도 결국 사실성 및 사실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에 근거한다.

그는 근래 붓펜을 대신하여 모필을 손에 들었다. 그렇게 1년여 기간 동안 이전에 작업 연장선상에서 북한산을 수묵으로 다시 작업했다. 수묵과 모필을 사용한 최근 작업은 전형적인 수묵산수화로서의 요건을 고루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수묵산수 즉, 실경산수 또는 관념산수와는 어딘가 다르게 보인다. 이는 아마도 전래의 화법을 따르는 전통적인 수묵산수의 기법과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형태감각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는 직접적인 산행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하는 접근방식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실재하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하며 그 전체상을 파악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그의 수묵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따라서 자의적인 해석이나 관념적인 이미지를 배체한 채 실재하는 실상에 대한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놓겠다는 의지를 관철한다. 그러기에 애매하거나 모호한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이미지는 그저 명백할 따름이다.

형태를 만들어가는 도구 즉 모필만 바뀌었을 뿐 형상에 대한 기법은 초기 펜을 사용하던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모필을 사용함으로서 선이 굵어지고 농담표현이 좀더 자유로워졌을 뿐이다. 선이 굵어졌다는 것은 두터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수묵화로서의 맛과 멋을 드러내는 데 아주 긴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전의 펜이나 붓펜에 의한 선이 명료하고 견고하며 치밀하다는 인상이었다면, 모필은 부드럽고 여유가 느껴지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어쨌거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의 기세 및 골격은 어디서 보더라도 힘차고 당당하며 또렷하다. 이와 같은 산의 형태적인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의 수묵산수는 치밀하고 명확한 형태를 추구하는 건축가로서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사가 가지고 있는 힘은 역시 실제적인 공간감이다. 어쩌면 선염이나 발묵 파묵과 같은 수묵산수의 보편적인 기법을 따르지 않고 담담히 점과 선만으로 형태를 결구하는 그의 수묵산수는 실제적인 공간감이 남다르다.

선염이나 발묵으로 표현하는 유현의 세계와는 달리 담백하고 담담하며 진솔한 형태감각이 지어내는 산수는 그 속을 들여다보는 듯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디에도 숨김이 없는 바위산의 형태 및 기세는 그의 수묵산수화가 지향해온 회화적인 이상향인지 모른다. 긴 시간의 산행과 현장작업이 불러들인 무르익은 조형감각은 모든 것을 물리치고 힘이 넘치는 바위산의 기세를 그대로 전하는데 집중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실사의 힘이야말로 그의 수묵산수화가 이끌어낸 성과이자 특색일 것이다. 철저히 관념을 배제한 채 더구나 담채조차 외면한 채 북한산의 전모를 다양한 시점에서 보여주는 그의 수묵산수는 소박하고 순수하며 순정한 조형세계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북한산 그림은 발로 쓰는 운문이자, 600여년을 서울과 함께 한 역사적인 실체로서의 산에 대한 헌사이다. 10여 년간 나무줄기에 해당하는 주능선과 가지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산자락을 탐색함으로써 북한산 그 안팎을 속속들이 가슴에 안게 되었으리라. 어쩌면 눈을 감고도 거리뷰와 같은 현실적인 풍경을 주마등처럼 떠올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ANN

 

김석환 건축가, 작가

평론_ 신항섭 미술평론가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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