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도시 경성의 장면 속으로 떠나는 유람기 《황금광시대》
1920~30년대 신문, 잡지 등 근대 매체에 남겨진 기록과 동시대 예술가들의 사유를 따라 100년 전 도시 경성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황금광시대’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은 1920 기억 극장 《황금광시대》를 10월 8일부터 12월 27일까지 개최한다. 다양한 분야의 동시대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5개의 씬(Scene)으로 구성한 프로젝트형 전시 《황금광시대》는 1920~30년대 발행한 민간 미디어 ‘신문’과 ‘잡지’의 기록을 통해 100년의 시공간을 이동하며 산책자의 시선으로 잊히거나 삭제된 당대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포럼의 장을 펼친다.
<금광 열풍을 꼬집은 기사(조선일보 1932.11.29.)>
1920~30년대 식민지 경성을 살았던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라 불렀다. 1929년 세계 대공황과 더불어 한반도에 전례 없던 금광 열풍이 불어 닥쳤던 당시, 여러 신문이나 잡지의 논평, 만문 만화, 문학 코너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계급이나 학식, 이념 가릴 것 없이 모두 금덩이를 찾아 굴을 팠던, 말 그대로 ‘황금에 미친(狂)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풍자와 세태의 기록이 남아있다. 《황금광시대》는 대중의 삶을 둘러싼 개인적, 사회적 공간을 표상하며 다양한 차원의 지식을 생산, 중계, 편집, 유통했던 신문, 잡지 등 인쇄 매체의 데이터베이스를 해체해 ‘남긴 것과 사라진 것 사이의 경계’를 방문한다.
《황금광시대》는 1926년 광화문 네거리에 지어진 이후 증축을 거쳐 시대의 흔적이 깃든 일민미술관 전관에서 5개의 신(Scene)을 펼친다. 그동안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일민미술관의 숨겨진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여 실제 기록과 허구가 뒤얽힌 상상의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연출한다. 참여 작가인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MIOON), 안무가 이양희, VR 영상 애니메이션 작가 권하윤은 폭넓은 리서치를 거쳐 개인전 규모의 신작을 선보이며, 1920년대 신여성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여성의 관점에서 혁명의 서사를 재구성한 소설가 조선희의 『세 여자』(2017)를 전시로 구현한다. 또한 일민 컬렉션의 조선시대 고미술 소장품 및 근·현대 작품 100여 점을 특별한 전시 연출을 더해 공개한다.
<뮌(MIOON), 픽션 픽션 논픽션, 2020>
첫 번째 신(1전시실)에 들어서면 만나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MIOON)의 신작 <픽션 픽션 논픽션 (fiction fiction Nonfiction)>은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1920년대 건축 양식인 문화 주택을 전시 공간 안에 얇은 LED 프레임으로 구조화하고, 문화 주택에 거주했던 피아니스트 윤성덕의 1933년 잡지 『신여성』에 실린 인터뷰를 입체 음향(Binaural Sound)의 내러티브로 들려준다. 수직과 수평의 기둥이 만들어낸 긴 시간을 함축한 공간 속에서 점멸하며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관람객의 움직임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 신(2전시실)에서는 안무가 이양희가 건축가 표창연, 시노그라퍼 여신동 등과 협업한 유기적 공간 설치 작업을 통해 100년 전 살롱(salon)을 재현한 가상의 카바레 ‘클럽 그로칼랭’을 무대로 하여 신작 <연습 NO.4>와 <언더그라운드 카페>를 선보인다. ‘클럽 그로칼랭’에서는 모임 별, 이윤정, 김신록의 초청 공연을 비롯하여 워크숍, 파티, 토크 등 관람객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능동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예정이다.
세 번째 신(3전시실)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2017)를 전시로 구현한다. 이 소설은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라는 당대의 신여성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여성의 관점에서 그동안 버려지고 지워졌던 기록들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봉합을 시도한다. 전시실에는 소설의 등장인물 중 허정숙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1922년 창간한 잡지 『신여성』의 편집실을 재현한다. 관객은 ‘세 여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아카이브 자료와 1920년대 소품으로 연출한 공간에서 100년 전 시공간의 경계를 이동하며 파편으로 남겨진 기록을 스스로 재구성한다.
<권하윤, 구보, 경성 방랑, 2020>
일민 김상만 선생(1910-1994)의 집무실을 보존한 일민기념실과 3전시실에 마련된 네 번째 씬(3전시실, 일민기념실)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권하윤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에서 영감을 받아 가상 현실(VR)과 신문 아카이브를 결합한 몰입형 설치 작품 <구보, 경성 방랑>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구보 씨’의 음성과 1920년대 당시 신문에 자주 등장했던 만문 만화의 캐리커처를 따라 당시 근대 도시를 거닐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신(3전시실)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에서는 건축가 표창연과 디제이 하성채와의 협업을 통해 일민미술관 수장고에 보관하던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이 2020년에 소풍을 나와 관람객과 만나는 놀이동산을 연출한다. 고미술품은 회전목마, 회전 그네, 회전 관람차,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채 전시하며, ‘세상은 요지경’,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유쾌한 시골 영감’ 등 1930년 일제강점기에 발흥했던 대중가요 만요(漫謠)가 들려온다. 어두운 식민지 시대를 살았지만, 희극적 정서를 잃지 않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해학을 엿볼 수 있다.
반짝이는 귀금속을 진열한 경성의 백화점, 신여성 피아니스트 윤성덕이 거주하던 문화 주택, 자유로운 몸짓과 대화가 오가는 밤의 카페, 사회주의 여성이 모여 글을 쓰던 잡지사와 정간과 폐간을 오가던 신문사, 모던 걸 모던보이가 풍요로운 청춘을 노래했던 종로 거리, 조선 민중들의 공예품과 서화 작품을 보관한 진열실까지 식민지 경성의 낯선 도시 풍경과 삶의 양식을 소재로 하는 5개의 씬은 다양한 예술적 형식으로 각각의 ‘기억 극장’을 구성한다.
관객들은 각 층에 구성한 기억 극장의 무대 위에 올라 마치 구름 속을 거닐 듯 근대 아방가르드 도시 경성의 흔적을 따라 소요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희미하게 남겨진 도시의 기억과 우연히 만나는 마술적 경험을 할 것이다. ANN
자료_일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