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을지로 7가의
아리움사옥_ 구 서산부인과 병원 등록문화재로 신청…
개발로 인해 사라질 뻔한 건물이 건축주의 애정과 의지로 문화재로 보존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한 ‘아리움 사옥(구 서산부인과 병원)’이 등록문화재로 신청된다. 중구 을지로 소재의 아리움 사옥은 옛 서산부인과병원 건물로 건축가 김수근과 더불어 국내 현대건축의 양대 산맥이로 일컬어지는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지하 1층, 지상 5층에 연면적 574.92㎡의 개인병원으로 1967년에 완공하였다. 1965년 건축주인 산부인과 의사 서병준은 자신의 병원과 주거를 겸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건축가는 1층은 진료실, 2~3층은 병상, 4층은 주거공간으로 설계하였다. 건축가 김중업은 천재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로부터 3년간 사사받은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서 1950년대에 세계적인 건축 조류를 경험한 장본인이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토대 위에 형성된 건축가의 설계 철학과 조형 감각은 건축주인 서병준 의사의 배려와 이해 속에 서산부인과 병원 건축으로 실현된 것이다.
건물은 산부인과 병원인 만큼 남녀의 생식기를 기본 형태로 하얀색 외벽과 파격적인 디자인 개념을 선보였다. 병원은 독특한 외관뿐만 아니라 1960년대 당시로서 적용하기 쉽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적용되었다. 병원으로서 청결함을 우선시하고 모든 건물 벽면과 바닥의 이음새부분을 둥글게 마감하여 먼지가 쌓이지 않고 말끔하게 닦일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이번 등록문화재 신청에는 건물이 소유주의 애착과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의 적극적인 설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1대 소유주 서병준 원장은 건물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고자 했으며, 김중업의 설계도 청사진과 공사 시방서, 1966년 시청으로부터 받은 허가 서류까지 일괄을 현 소유주 정인훈 대표에게 인도했다. 아리움 정인훈 대표 역시 IMF 시기를 거치면서도 사옥을 매도하고나 새롭게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고 원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회사 사옥을 귀중한 작품이자 문화유산으로서 지켜나가고자 하는 서원장과 정대표의 대를 잇는 건물에 대한 애착과 보존 의지가 1967년에 완공된 건물이 오늘날까지 건재할 수 있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주차장이 없고 단열이 취약하여 더위와 추위에 견디기 어렵지만, 건물을 지키려는 정대표의 소신은 일관되어 실천되었다.
향후 아리움 사옥이 문화재로 등록된 이후를 위해 정인훈 대표는 50여 년 동안 원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건물과 함께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기억과 경험도 소중히 기록하고자 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정인훈 대표는 “아리움 사옥 건물이 준공된 지 5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에 등록문화재로 등록 신청을 하고, 한양도성과 광희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 등 주변의 역사문화 자원을 안내하고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센터로 꾸미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 사옥’ 등록문화재 제586호로 등록됨으로써 국내 문화재의 영역이 현대 건축물로까지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김중업의 아리움 사옥(구 서산부인과 병원) 역시 문화재로 등록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역사문화유적으로서의 커다란 의미를 다지는 기회가 되고 있다. 개발논리에 휩쓸려 자칫 사라질 수도 있는 우리의 소중한 건축물이 건축주의 애정과 신념으로 문화재로 보존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문화재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커다란 건축의 울림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세진 기자
자료_서울특별시, 정인훈(아리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