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박래현을 재조명하는 회고전 개최
1985년 10주기 전시 이후 개인이 비장(秘藏)하였던 대표작들 대거 출품
<박래현, 화장, 1943, 종이에 채색, 131×154.7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을 2020년 9월 29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개최한다.
박래현(1920-1976)은 식민지 시기 일본화를 수학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하였다. 박래현은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감할 수 있는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탐구한 미술가이다. 특히, 섬유예술이 막 싹트던 1960년대에 박래현이 선보인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박래현은 낯설다. 가부장제 시대는 ‘박래현’이라는 이름 대신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 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을 부각했다. 이번 전시는 김기창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 박래현의 성과를 조명함으로써 그의 선구적 예술작업이 마땅히 누렸어야할 비평적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채색, 267x210cm, MMCA 소장>
박래현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에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화단의 중진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이 일자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1974년 귀국 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으나, 1976년 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제대로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시명인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다.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여행 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통역자’는 영어, 한국어, 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 짓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였다.
<박래현, 작품, 1970-73, 태피스트리, 119.2x119cm, 개인 소장>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은 완벽한 기술 습득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구사했으며, 마침내 기술을 초월하여 하나의 예술로 통합시킨 박래현의 도전을 따라,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했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조선미전 총독상 수상작 <단장>,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을 한자리에서 공개한다.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어떻게 모색했는지 살펴본다. 『여원』, 『주간여성』등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들을 전시하여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은 세계를 여행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완성해 나간 독자적인 추상화의 성격을 탐구한다.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을 그린 스케치북을 통해 박래현이 독자적인 추상화를 어떻게 완성했는지 함께 추적해볼 것이다.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한다. 박래현이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을 한자리에 함께 공개하며,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박래현이 제시한 새로운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은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10월 8일 오후 4시에 약 40분간 유튜브에서도 중계한다. 또한, 덕수궁관 전시 종료 후 내년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오랫동안 박래현의 작품을 비장(秘藏)했던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라며,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ANN
자료_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