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 개인전 '차경' 갤러리바톤에서 8월 7일까지 개최
예뻐 보이기 위해 심은 식물이 마침내 시들었을 때 식물에 깃든 의미는 무엇인가?
갤러리바톤에서 윤석원 작가의 개인전 ‘차경(Enfolding Landscape)’을 8월 7일까지 전시한다.
윤석원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사유와 관찰을 기록하는 매체로서 회화를 이용한다. 사진이 휘발성이 강한 시각 기억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작가라면 대부분 널리 활용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원 작가에게 계절과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모하는 도시의 면면을 직접 촬영하고 수집한 사진은 작품의 중요한 원천이다. 최근 수년간 그의 관심은 식물, 그중에서도 관상 용도로 심은 화초와 관엽수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작(前作)이기도 한 ‘Dry Plant’ 시리즈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효용 가치를 다한 식물의 '마침내 정지된 시간'을 역설적으로 화려하게 묘사하며 자연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자신의 작품 세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묘사로 대상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윤석원 작가의 강점이다. 여기에 오랜 기간 동안 숙련한 특유의 회화적 기법을 동원하여 대상에 서려 있는 사적인 기억과 감정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추가하는 행위는 그의 작품을 순수 정물화의 영역 밖으로 열어준다. 이 기법은 작가의 심상으로 촉발되어 묘사 대상에 주관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화면에 전개하며, '윤석원의 회화'가 총체적으로 우리에게 표출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그의 화면에서는 표층에 수직 또는 수평의 반복적인 붓 자국이 존재한다. 주로 화면에 고르게 분포한 단일 이미지의 말단에서 존재하는 붓 자국은 대상을 누르고 양 방향으로 밀어내는 붓의 움직임으로 구체화한다. 이러한 형태는 이미지 윤곽 부분의 식별성을 감소시키고 톤 다운한 색감과 국지적인 운동성을 띤다. 이는 '스냅사진(snapshot)’의 주된 특징이며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미지의 출처가 사진임을 나타내는 기표로 해석한다. 기법적인 '붓의 종과 횡적 진동'은 손목 스냅의 피벗 범위 내의 진폭으로 화면에 중첩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화면을 분할 시 부분적으로 국지적인 추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데, 여백 없이 이미지로 가득 찬 전면에 걸쳐 고르게 분포한 탓에 작품의 전반에 걸친 화면의 색감을 주관하기도 한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수평선이 가지는 울림(Grundklänge)은 차가움과 편평함이며, 수직선은 따뜻함과 높이를 구현한다고 했다. 수직과 수평의 붓 터치 진폭이 반복적으로 서로 이웃하며 군집을 이루고 있는 윤석원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온도감과 중립적인 시선의 여운은, 일률적으로 연보라로 칠해진 캔버스의 테두리와 더불어 칸딘스키의 주장에 무게를 더한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50년대 회화에서 보이는 "창백한 색조의 산발적인 붓놀림—루이지 피카치(Luigi Ficacci, b.1954)”은 주로 이미지가 가진 사실성에 반하는 힘의 분출, 탈현실적 분위기의 표현, 즉흥적인 행위의 표상으로 해석한다. 삶의 유한함, 육체에 기반한 존재의 부조리함 등의 거대 서사에 발을 들여놓은 베이컨에게는, 이러한 기법이 회화적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테크닉이었다. 매 순간 발자국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한 부분을 예리하게 도려내어 자신의 시선으로 재단하는 윤석원은 분명 거대 서사의 재현을 지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석 과정에서 이미지에 덧입히고자 했던, 분망함과 정적이 공존하는 삶의 내밀함에 대한 작가의 독백은 보다 성숙해진 테크닉과 정교한 주제 선택에 힘입어 현대 회화가 가진 잠재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ANN
자료_갤러리바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