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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사랑하는 시인 '백석'이 소망하던 마지막 일곱 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등록일 2020년07월06일 10시3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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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빼앗긴 시인에게 소망하던 삶을 선물해 주는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인다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출간된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일곱 해의 삶을 그려낸다. 주인공 ‘기행’이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들이 사랑한 시인 ‘백석’은 1948년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남한 잡지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후, 해외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 1956년 동시를 발표하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고 1962년에 <조국의 바다여>, <나루터> 등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뒤 절필한다.

 

소설의 주인공 ‘기행’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고 고백한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 탈수하지 않는 법이나,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런 절망 같은 현실 속에서 국가는 기행에게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고 강요한다. 시인 기행이 자신의 전부와 같은 시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국가가 원하는 시는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기행은 우연히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다가 만난 러시아 시인 ‘벨라’와 교류하며 무기력하게 살던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행은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다”고 벨라에게 고백한다. 그러자 벨라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이라고 답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와 일맥상통하는 장면이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 계속해서 시를 쓰는 것. 그것이 슬픈 천명을 지닌 시인의 사명감일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런 말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은 그 시대와 개인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어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언젠가” 이뤄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기행’은 시인 ‘백석’이 살지 못한, 늘 소망하던 삶을 산다. 그러므로 소설 속 인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살게 된다. 한 번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끝내 이루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른 한 번은 자신이 원했던 바로 그 삶의 방식으로. 완결되었다고 여겨진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두 번의 삶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연수 작가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에게 선물과 같은 소설이 아닐 수 없다. ANN

 

자료_문학동네

 

박은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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