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창의 7개의 키워드로 보는 건축 ‘현상’
건축 현상을 체험하는 감각의 키워드… ‘또 다른 백(Off-white)’, ‘관능적 역동(Sensual Form)’, ‘시각적 촉각(Tactility)’, ‘외피의 일탈(Another Skin)’, ‘희미한 경계(Blurred Boundary)’, ‘시간의 흔적(Weathering)’, ‘가벼움이라는 감각(Lightness)’ 글·사진 전유창 | 368쪽 | 공간서가 발행
“건축가는 본질적으로 축조의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만드는 craft’ 감성을 보듬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구축을 실현하는 기술자이다. 건축의 표면은 형태, 패턴, 텍스처, 색채 등의 복합적인 조합을 통해 거친 정도, 무게감, 경도, 온도 등의 감각적 특성을 표현한다. 섬세의 정신으로 건축을 대하면 우리는 물리적 특성을 넘어 시각, 청각, 촉각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시간의 변화, 장소의 의미, 기억의 축적 등과 같은 더 깊은 감각적 의미를 만날 수 있다.”
책의 내용에서 잘 알 수 있듯 ‘건축, 감각의 기술’은 기존 건축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졌던 공간에 대한 동경과 형태에 대한 집착을 넘어 건축 표면에서 감각과 기술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저자는 ‘감각’과 ‘기술’을 두 축으로 하여 현대건축의 외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연구를 제시한다. 다양한 해외 사례를 포함하고 있으며 저자가 20여 년에 걸쳐 답사한 건축물 중 37개를 선별해 일곱 개의 관점으로 묶고 감각의 현상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각 장은 감각의 관점에서 건물의 외피를 시각적으로 탐독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구축의 관점에서 구조, 디테일, 재료 등의 기술적 맥락을 설명한다. 건축의 외연을 넓힐 수 있도록 인문학적 배경이나 현대 미디어 환경의 변화 등 시대·문화적 배경도 짚어본다.
현대사회가 촉발한 감각과 체험을 통한 이미지 소비는 사회적 현상을 넘어 건축의 표현 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은 감각을 확장하는 도구로서 우리가 접촉하는 환경을 변화시키며, 인간의 신체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개개의 작품들은 주제별로 느슨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묶여있으며, 개개의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각에 따른 단편들의 집합에 기초해 사고를 집약한다. 독자들은 선명한 인식과 이해를 도모하기보다는 각 작품의 부분을 모아 모자이크처럼 희미한 윤곽을 더듬으며 주제별로 영역을 자유롭게 가로지를 수 있을 것이다.”
7개의 키워드로 보는 건축 ‘현상’을 지적하듯 각 장의 주제인 ‘또 다른 백(Off-white)’, ‘관능적 역동(Sensual Form)’, ‘시각적 촉 (Tactility)’, ‘외피의 일탈(Another Skin)’, ‘희미한 경계(Blurred Boundary)’, ‘시간의 흔적(Weathering)’, ‘가벼움이라는 감(Lightness)’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건축 현상을 체험하는 감각의 키워드이다.
‘또 다른 백’은 흰색이 단순한 색상의 일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체험에 의해 인지되는 변화하는 물질의 일부로 ‘현상’에 가깝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빛과 그림자는 흰색에 다양한 변화와 역동적 이미지를 만든다. 노란집(발레리오 올기아티), 카사델 파쇼(주세페 테라니), 게티 센터(리처드 마이어), 키아스마 현대미술관(스티븐 홀), 비트라 디자인뮤지엄(프랭크 게리), 밀워키 아트뮤지엄(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이 소개된다.
“흰색의 다양한 표현은 여타 색과는 달리 무한한 변화의 심오함을 보여주며 우리의 섬세한 감정이 진동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흰색이 고정된 색이 아니라 체험에 의해 인지되는 변화하는 물질의 일부로 ‘현상’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다고 다 같은 흰색은 아니다. 곡선을 이용한 조형과 공간은 건축에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감각적 상호작용을 부여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의 일부이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비정형 구축 과정은 시각적 강조나 복잡한 형태를 풀어내는 수준에서 벗어나 신체와 건축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감각의 의미를 확장한다.”
‘관능적 역동’은 파울 클레 센터(렌조 피아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프랭크 게리), 롤렉스 러닝센터(SANAA) 등의 사례를 통해 곡면 형상이 주는 감각적 체험과 곡면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 등을 살펴본다. 이러한 비정형 건축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와 시공에 활용하면서 본격화되었다. 파라메트릭(자하 하디드의 노드파크 케이블 철도 역사), 다이어그램(UN스튜디오의 벤츠 뮤지엄) 등의 비정형 건축의 디자인 원리도 살펴본다.
‘시각적 촉각’은 전통적인 시각 중심의 위계질서를 대신해서 나타난 복합지각으로서 눈 자체가 촉각의 감각기관처럼 기능하는 것을 말한다. ABC 뮤지엄(아랑구렌+가예고스), 트루텍 사옥(바코 라이빙거),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헤더윅 스튜디오)에서 보듯 외피를 구성하는 재료의 특성과 표면을 구성하는 독특한 방법이 만드는 다양한 표면 효과는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고 싶은 능동적 감각 욕구를 자극한다. 이는 소비사회의 최전방에서 소비자의 욕망을 유혹하며 적극적인 감각 체험을 구현하는 건축적 장치인 플래그십 스토어(아오키 준의 루이비통 긴자, 헤르조그 & 드 뫼롱의 프라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적극 활용된다.
‘외피의 일탈’은 단순히 내외부를 가르는 고정된 경계면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능동적 표면’으로서 외피의 역할을 살펴본다. 건축의 외피는 피복처럼 습기나 열, 소음 같은 외부 환경 인자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기능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패션처럼 건물의 인상을 만들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구조체로부터 외피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서 외피는 더 얇고 더 가볍고 더 자유로워졌으며 그 역할 또한 강화되었다. 이중외피로 친환경적인 성능을 강화한 사례(모포시스의 샌프란시스코 연방정부청사)를 비롯해 외피가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과 이미지를 드러내는 등 시각적 표현이 가능한 매체가 되는 사례(SANAA의 뉴뮤지엄,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시그널 박스, OMA의 시애틀 공공도서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현대문학박물관)를 만날 수 있다.
“현대건축에서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은 건축 표면의 이미지와 공간 표현의 잠재력을 확장해준다. 이는 건축 체험에서 우리가 주로 의지하는 시각적 경험을 약화시키고 우리 몸에 잠재된 다른 감각들이 예민하게 깨어나게 만든다. 선명도와 정확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흐릿한 경계’의 무딤과 모호성은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건축을 경계를 통해 감각의 조건인 현상을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할 때, 경계는 ‘차이’에서 발생한다. ‘희미한 경계’는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여 건축 표면의 이미지와 공간 표현의 잠재력을 확장해준 사례들이 소개된다. 투과, 산란, 반사 등 유리의 물성과 반투명성을 활용하여 희미함과 모호함을 구현하는 애플 뉴욕(보린 키윈스키 잭슨), 까르띠에 재단(장 누벨), 디올 오모테산도(SANAA),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페터 춤토르)와, 수증기나 안개처럼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모호성을 활용한 블러 빌딩(딜러 & 스코피디오)이 소개된다. 희미한 경계는 모호성을 가시화한 현상으로 감각을 열린 상태로 이끌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시간의 흔적’은 바람과 비 등의 자연적, 환경적 요소와 시간에 의해 건축 표면에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뜻하는 웨더링(weathering) 현상을 다룬다. 전통적으로 건축에서는 웨더링을 거스르는 매끈한 표면을 가치 있게 여겨졌지만 웨더링으로 인한 시간의 흔적이나 노화의 미학이 건축물에 특별한 아우라나 감성을 부여하기도 한다.(카를로 스카르파의 브리온 가족묘지, 알바루 시자의 레카 스위밍풀) 여기에 더해 건축가들은 건축 재료나 축조의 특성을 재구성하여 의도적으로 웨더링 효과를 강조하거나 촉진하기도 한다.(페터 춤토르의 성베네딕트 예배당, 헤르조그 & 드 뫼롱의 드 영 미술관, 지곤+구어의 오스카 라인하르트 컬렉션 확장 및 리모델링) 그러나 너무 빠르게 폐허로 변해버린 피터 아이젠만의 갈리시아 문화도시에서 보듯 계산된 노후화가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가벼움은 무거움이 주는 시대적 진지함에 유머, 재치, 우아함과 같은 개념을 제공한다. 또한 정서적으로는 경박함, 불안정함, 유약함의 이미지를 일소하고 경쾌함, 쾌적함 등의 분위기를 제안한다. 가벼움은 현대사회의 기술이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이기도 하다. 가벼움은 물리적 무게와 중력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단순하게 무게가 없는 것weightless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서적, 감성적 측면에서 풍요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건축은 ‘무게’를 효율적으로 지탱하는 ‘반중력의 구축’을 실현해가는 기술적 노력의 산물이다. ‘가벼움이라는 감각’은 구축의 견고함을 넘어 ‘반구축’ 현상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서 성취된다. 구체적으로 구조, 재료, 접합의 속성을 새로 정의하여 가벼움을 구축한다. 이는 고도로 진보된 재료 가공 방식, 구조 엔지니어링의 발전, 컴퓨터를 이용한 구조 및 디자인의 통합 등의 기술적 노력을 통해 완성된다. 바라하스 국제공항(리처드 로저스 & 안토니오 라멜라), 포르투갈 파빌리온(알바루 시자), 알프레드 러너 홀(베르나르 추미), 서펜타인 파빌리온(프란시스 케레)의 예에서처럼 가벼움의 감각은 느슨함과 경쾌함을 환기시키고 여유로움을 주지만 팔라시오 데 콩그레소(산티아고 칼라트라바)처럼 고전적 도시 환경과 상충하고 이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 전유창은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건축사, LEED AP이다.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학부와 대학원,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미첼 지아골라 아키텍츠Mitchell Giurgola Architects에서 디자이너 및 이사로 재직했다. 뉴욕 NYIT(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Academy of Art University,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튜터, 크리틱, 방문학자 등을 역임했다. 일본 신건축 Central Glass 공모전 대상(2000), 일본 신건축 주택 공모전 (2001), Arquitectum 공모전(2010) 등 다수의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 aDlab+의 공동대표로 건축 실무와 디지털 디자인 관련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의도, 뚝섬, 강동의 한강 파빌리온(2011, 2012, 2013), 구로 어린이집(2014), 사마르칸트 직업 훈련원(2015), 한전 154/70Kv 에너지 센터(2018), 캄보디아 아클레다 비즈니스 대학(2019) 등이 있다. 공저로 『메이드 인 디지털』(아키랩, 2018)이 있다. ANN
전유창 저자, 자료_ 공간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