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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고아'의 존재를 기록한 특별한 사진전 《주명덕 섞여진 이름들》

처음으로 《섞여진 이름들》 전작 51점 전시

등록일 2020년06월17일 10시0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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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 전 《주명덕 섞여진 이름들》

한미사진미술관 12번째 소장품 전시로 주명덕 초기 작업 선보여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주명덕>

 

한미사진미술관은 소장품 전 주명덕 《섞여진 이름들》로 2020년 첫 전시를 시작한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자, 한국 사진계의 중요한 전시인 주명덕의 《포토에세이 홀트씨 고아원 PHOTO ESSAY Harry Holt Memorial Orphanage》이 개최된 지 5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66년에 개최한 이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 남겨진 혼혈 고아들을 기록한 작업들을 통해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고, 이후 『섞여진 이름들 The Mixed Names』 사진집으로 1969년 출판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한미사진미술관이 소장한 50여 점의 《섞여진 이름들》과 《용주골》, 《운천》 연작을 소개하며 당시 1960년대 초 서울의 모습을 담은 작업을 함께 전시하여 현대 다큐멘터리로서 사진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고자 한다. 1966년 4월 24일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 입구에는 주명덕의 《포토에세이 홀트씨 고아원》의 손으로 만든 포스터가 걸렸다. 전시장 벽면에는 작은 크기의 작품 95점이 빼곡히 걸렸다. 동족상잔의 비극에 참전한 외국 군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남겨진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가슴 한쪽엔 깊이 새겨진 전쟁의 상처가 다시 살아났다. 전쟁 이후 한국 사진계는 사실의 기록에 집중하였다. 사진이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고, 조형적인 구도의 완성도를 갖춘 한 장의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의 생활상을 기록한 모든 사진은 각각이 명작이었으나 동시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거나 작가의 개인적인 시각을 투영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주명덕>

 

그러나 주명덕의 《포토에세이 홀트씨 고아원》은 이전 세대 사진가들이 추구하던 리얼리즘의 전통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의 주제로 엮인 탄탄한 서사적인 구조를 가진 작업이었다. 사실과 기록으로써 분명한 주제 의식과 시대상이 담겨 있는 이 연작은 당시 사회가 당면한 혹은 미래에 닥칠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감정을 세련된 편집으로 구성하여 당시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서 한국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 경제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참담함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20대의 젊은 사진가가 목도한 혼혈 고아의 삶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고 사진가로서 외면할 수 없는, 그리고 다 같이 공감하고 책임져야 할 시대적 문제로 기록해야 했다. 사진가는 그들의 아픔을 사진에 이용하지 않았다. 비관적인 사람에게는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치부되겠지만, 작가는 그들의 천진함 속에서 드러나는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작가의 직감으로 포착한 비판적 시선의 다큐멘터리 연작을 전시하여 전통 민족 개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 전에 《섞여진 이름들》 연작과 함께 구성되는 《용주골》(1968)과 《운천》(1971)은 미군 주둔 지역에 여전히 잔재한 혼혈 고아 문제를 더욱 성숙한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연작이다. 이 작업은 1960년대 대표적 시사 월간지인 『월간중앙』을 통해 연작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또한, 작가가 혼혈 고아에게 받은 손 편지를 포함하여 1966년 전시 방명록, 작가가 직접 만든 『섞여진 이름들』 사진집 편집본 등 당시의 흥미로운 아카이브 자료들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또한, 1960년대의 시대상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프레이밍에 기초하여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주명덕의 서울 작업도 전시한다.

 

주명덕은 한국의 사진가로서 내가 사는 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성에 주목한 《섞여진 이름들》은 전쟁의 흔적을 냉철한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다루었다면 1962에서부터 1965년까지 포착한 서울 작업은 작가의 감성을 스냅숏으로 담은 작업이다. 사진을 완벽히 공부하지 못한 20대 젊은 사진가의 습작이라고 작가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익숙한 일상을 담은 그의 도시 연작의 출발이 되는 중요한 초기작이다. 전쟁 이후 대도시로 변화한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사진가로서 낭만을 즐기던 20대의 젊은 사진가는 어느덧 80대 노년을 맞이하였다. 그가 거닐던 덕수궁 산책길은 빼곡한 돌담으로 변하였고, 서울을 달리던 전차는 머나먼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찍은 《섞여진 이름들》의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ANN

 

자료_한미사진미술관

박은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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