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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주거 문화 논단,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9

“깊은 마음의 주거학, 작은 우주 집의 텔로스를 회복하자!”

등록일 2020년06월08일 08시1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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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주거 문화 논단,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9

“깊은 마음의 주거학, 작은 우주 집의 텔로스를 회복하자!”

 


 

우리에게 집은 무엇일까? 다시 집과 주거 환경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집이 가진 가치를 철학적으로 조명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세계 안의 우리의 구석인 것이다. 집이란 – 흔히들 말했지만 – 우리의 최초의 세계다. 그것은 정년 하나의 우주다. 우주라는 말의 모든 뜻으로 우주다. 집을 우주에 비유하는 것은 그것이 가진 원초적이고도 영원함, 그 의미심장함 때문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집은 우리 삶의 근원이고 영원히 기억되는 곳이며,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일들과 그 의미가 기록되는 곳이다. 그래서 집은 자아의 상징이다”라고 말한다.

집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 보자. 집이라는 작은 우주는 좀 더 큰 우주 ‘우리 동네’가 되고, 다시 더 큰 우주인 ‘우리 도시’가 된다. 결국 우리 도시는 확장된 자아의 상장이라고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집을 연결하는 것은 길이다. 아이들은 그 길에서 철마다 종목을 달리하며 놀이를 벌이고 ‘나’와 ‘우리’, 그리고 더 큰 ‘우리’를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며, 결국 ‘시적 서정과 상상력, 어린 시절의 꿈으로 가득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구릉지에 위치한 마을과 경작지, 바다 조망 ©최두호>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아’나 ‘꿈’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보다는 경제성, 편리함, 환금성과 같은 현실적 가치를 더 추구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집을 선택할 때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자신과 가족이 성장하고 그 흔적을 새겨 갈 의미심장한 공간으로서 집을 선택한다기보다는, 우선 편리하고 언제라도 팔 수 있으며 재산 증식 수단으로서 집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현대인은 흔히 유목민에 비유되곤 한다. 도시민은 쓸쓸하다고 한다. 갈 곳이 없다고도 한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아닐까. 부동산은 그것이 가진 고정성(물리적 위치의 불변성), 부증성(면적의 유한성), 개별성과 위치성 등과 같은 특성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가격이 오르내린다. 주택도 분명 부동산이니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택은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 가는 의미심장한 곳, 작은 우주, 집이다. ‘집’의 텔로스(telos)를 회복하자.

 

<청계산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 ©최두호>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주택 소비자로서 공급자에게 당당히 요구하자! 우리네 삶이 담긴, 담을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해 달라고…. 자아를 투영할 수 있을 만큼 비용이 적당한 공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 가능한 사회 통합적 공간, 오랫동안 머물면서 정성들여 가꿀만한 진솔한 공간을 디자인해 달라고 요구하자! 깊은 산속에서 오랫동안 자리 지켜 온 멋진 소나무를 옮겨와 정원을 치장하기보다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담긴 주거단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자! 길을 걷던 사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담긴 넉넉한 단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자! 그리고 그 단지를 잘 가꾸어 품격이 높은 단지로 만들자!

결국 우리의 주거 환경, 아파트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은 공무원이나 건설업체, 설계자가 아닌, 집에 거주하는 우리 모두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급자도, 정책 입안자도 한편으로는 주택 소비자들이다. 우리 모두의 힘을 모으지 않고는 새롭게 다양한 품격 높은 단지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ANN

최두호 ㈜토문건축사사무소 대표

 

최두호 필자는 1952년생으로 청주고등학교,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을 졸업했다. 건축사와 도시학 박사로서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 근무(1977~1990)했으며, 1990년 9월 15일 ㈜토문건축사사무소를 창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는 건설교통부 중앙건설 심의위원, 서울시공공건축가 총괄계획가,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한국주거학회 부회장, 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참고 문헌> * 최두호, 한기정, 아파트를 새롭게 디자인하라, auri지식총서, 2010 * 최두호, 주거단지 계획 이론의 변천과 계획 요소의 특성연구, 2007 * 김진수, 아파트 브랜드 경험 효과에 관한 연구, 한국지역개발학회 제29권 4호, 2017 * 신한우 외,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요인 비교에 관한 연구, 한국건축시공학회, 제8권1호 * 발레리즐레조, 아파트공화국, * 최두호, 토문건축이 이야기하는 도시 주거지, 제1편 도시 주거 바라보기, 2015 * 손세관, 20세기 집합주택, 열화당, 2016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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