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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09> 머물고 싶은 집

“집이란 고독한 내 마음이 편히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등록일 2020년06월08일 07시5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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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9.  단독주택, 집은 개성에 맞게 살도록 지어야 한다

 

"우리들이 마음속에 꿈꾸고 있는 집, 즉 머물고 싶은 집의 모습은 아마도 ‘마음이 편안한 집’ ‘느낌이 좋은 집’ ‘아늑하고 평온한 집’ ‘햇살이 유난히 잘 비치는 집’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복잡한 도심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생각을 한번쯤은 하곤 한다. 도심 속 환경, 특히 고층의 콘크리트 타워가 즐비한 삭막한 환경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을 늘 긴장 속에 살도록 이끈다. 긴장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탈 아파트, 탈 도심을 꿈꾸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해 보고자 삶의 터전을 갑작스럽게 옮긴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게다가 쇼핑, 의료, 문화 예술, 교육 등을 위해 인프라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도심을 떠나 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도심지 거주자들의 이런 상황을 반영해 최근 분양중인 도심지 아파트는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단지 내에 작은 공원이나 소규모의 숲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인공적으로라도 자연적인 요소를 단지 안으로 끌어들여 거주자들이 도심지를 떠나 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도록 하는 것인데, 탈 아파트 탈 도심을 꿈꾸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자연적인 요소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자연과 관련된 내용을 가지고 펼치고 있는 분양 마케팅의 일부다. ‘숲속마을’이나 ‘숲 아파트’와 같이 자연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아파트와 결합해서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숲 아파트라고 숲속에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설사 숲 속에 아파트가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고층으로 된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숲 마케팅을 하는 아파트 단지들은 외부적인 요소에 집착할 뿐 정작 신경써야할 주생활공간에 대한 얘기는 빠져있다. 주생활공간을 다른 아파트 단지와는 다르게 특화 시키는 일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시간과 돈을 적게 써서 눈에 띄기 쉽게 만들 수 있는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거주자들에게 과연 어떤 실질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에 비해 인공적이지만 약간의 차이를 가진 숲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하니 이런 외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마케팅은 실제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하는가보다. 인간에게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자연회귀’의 본능이 정말 있는 것 같다.   

 

 
 

집은 내 생각과 철학이 그 안에 잘 담겨져 있을 때 빛을 발한다. 그런 집은 내 몸에 잘 맞는 맞춤 정장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편안한 집은 그 안에 사는 내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락하고 행복하게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집짓기를 결정한 사람들은 집을 짓고 나면 대부분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겠노라 결심한다. 그러나 그 결심이 오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집에 대한 애정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애착심도 떨어지게 된다.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없어지면 관심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버려진다. 집도 마찬가지다. 애착심을 가져야만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지속된다. 집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애착심이 떨어진다. 그런 집에 있으면 마음에 안정을 찾기가 어렵다. 집에는 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 나와 맞지 않는 요소가 더 많으면 내 마음은 그 집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인지신경과학자 콜린 앨러드는 그의 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장소, 감정, 결정의 연결고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소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그 감정이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 안락함, 행복감 등의 감정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앞에서 열거한 감정들과 정반대되는 감정들을 제공하는 집이라면 누구라도 더 이상 그 집에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떠나는 것만이 최선책인지 아니면 참고 더 살아야 하는지 최종 결정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나에게 맞는 집은 내 생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야 한다. 내 생각과 철학이 많이 반영되면 될수록 그 집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된다.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그 곳에서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내 마음이 열리고 집과 하나 됨을 느끼게 된다. 내 몸에 딱 맞는 맞춤정장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집은 소유물이 아니라 사는 곳(living)이라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처음부터 몇 년 후에 상황이 변하면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짓기를 시작하면 내 생각과 철학을 적용시키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집을 여전히 소유물이나 투자가치로서 인식한다. 현재 나의 생활 방식에 맞는 집을 계획하기 보다는 나중에 이 집을 사게 될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여러 사람이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집을 떠올리기 쉽다. 이를테면 보편적 주거형태의 대명사인 아파트 구조를 염두에 두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생활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집이 아니라면 어떻게 집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마음속에 꿈꾸고 있는 집, 즉 머물고 싶은 집의 모습은 아마도 ‘마음이 편안한 집’ ‘느낌이 좋은 집’ ‘아늑하고 평온한 집’ ‘햇살이 유난히 잘 비치는 집’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런 집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집짓기 기회가 왔을 때는 이런 생각들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앞서 얘기한 내용 대신에 ‘크고 넓고 좋은 집’ ‘멋진 집’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북유럽 스타일’ ‘토스카니 스타일’ ‘프로방스 스타일’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형태나 스타일에 집착하다보니 집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를 잊어버리기 쉽다. “집이란 고독한 내 마음이 편히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루이스 바라간의 말은 진정한 가치를 뒤로 한 채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을 오래 전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던 같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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