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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08> 사는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집

“집은 나와 가족에게 평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행복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등록일 2020년06월08일 07시2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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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8.

단독주택, 집은 개성에 맞게 살도록 지어야 한다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를 닮은 집을 만들려면 나의 생각이 그 속에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주의 마음가짐, 즉 생각이 중요하다. 건축주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집의 가치는 180도로 바뀔 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이 녹아 있지 않은 집은 단순한 셸터(shelter)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다.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고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장소로서의 기능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과 철학을 집에 담는 다는 것은 왜 그렇게도 중요한 걸까.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건축물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잘 계획되고 지어진 건축물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사회 전반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잘못된 건축은 사람들에게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은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집을 짓느냐에 따라 그 집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아니면 악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내 집 짓는데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에 미칠 영향까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처칠의 말처럼 내 집이 주변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은가. 집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처칠의 말은 되새겨 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감동을 느낀다. 감동을 느낀다는 건 마음이 움직였다는 거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건축물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2016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교회건물이 주었던 감동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이 질문에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고 영국에서 6년간 살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로 건축여행을 갔다 온 경험이 있다. 2008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건축업계에 몸담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동안 건축업계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런 나도 100여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덴마크의 작은 교회에 가기 전까지는 건축물에서 감동을 느낀 경험은 갖지 못했었다. 지금도 그 교회를 생각하면 그때의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일 정도의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 건물은 바우스배어(Bagsvaerd) 교회다. 덴마크 태생의 건축가 요른 웃존(Jorn Utzon)이 설계해서 1976년에 완공된 코펜하겐 근교의 작고 아담한 교회다.

 


 

나는 영국에 있을 때 시간 날 때마다 로마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를 돌아보며 유서 깊고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교회, 성당들을 직접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졌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신기하고 호기심에 여기 저기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냥 좋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큰 감동은 없었다. 그런데 규모도 작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박스형태의 교회건물에 첫 발을 내 딛자마자 몰려들었던 감동이란..., 아직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 그 감동이 눈에 아른 거린다. 그렇게 물밀 듯 밀려온 감동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날 내 심리적인 상태가 다른 때보다 더 센티멘탈 했었던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혼자만 느꼈던 감정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날 나와 같이 그곳을 찾았던 지인 두 명도 내가 느꼈던 비슷한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나중에 내게 고백했다. 그날 그 교회에서 나와 지인이 느꼈던 것은 건물이 주는 아름다움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건축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그렇게도 큰 감동을 선사 했던 것이다. 유럽의 여러 유서 깊은 교회·성당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 왜 중세 종교건물과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교회에서 전해졌을까?

바우스배어 교회 방문 이후 1년 동안이나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7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건축’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건축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좋은 기분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건축물이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발표자의 말을 들고는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아! 그렇구나. 바우스배어 교회에서 느꼈던 감동도 건물이 주는 평안하고 안락한 마음에서부터 나온 거였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황홀한 감정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동시에 평안한 마음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평안함의 중심에는 강렬하지만 교회 내부 전체에 은은하게 들어오는 자연광(daylight)과 풍성한 수직 공간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천장 꼭대기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 빛이 곡선 면을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고 있다>


<예배당 중앙에 높이 솟은 수직공간을 통해 내부로 퍼지는 빛은 평안하고 안락함을 제공한다>

 

바우스배어 교회는 아름다움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무엇인가를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사용자에게 아름다움(美)의 메시지와 감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바로 그것이 건축이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말이다. 바우스배어 교회를 두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가 생전에 이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면 “바우스배어 교회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감성 그리고 평온함을 제공하는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본 중 몇 안 되는 감동적인 건물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아이를 기르는’ 등의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생명의 안전과 사생활의 보전’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나와 가족의 건강과 휴식을 위해 즐겁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서의 기능도 제공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전자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집에 살기 위해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경향이 있다. 잠을 자는 방을 1층에 배치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2층에 배치할지 고민하고, 면적은 작아도 방 3개는 있어야 한다며 무리해서라도 평수를 넓혀 설계를 고쳐야할 지 말지 노심초사한다. 주방에는 어떤 브랜드의 주방가구를 사서 넣을지 몇 인용 식탁까지 배치가 가능한지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휴식을 취하는 거실에는 몇 인치 크기의 TV를 어느 벽에 걸지 일자형 소파가 나을지 L자형 소파가 나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에 시간을 쓰고 고민을 하다 보니 정작 ‘나와 가족의 건강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집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은 “나의 집은 나의 피난처이자, 건축의 감성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집은 단순히 냉정한 기능의 편리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집은 사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기능과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하게 제공해야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다른 좋은 부분들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의 하루 일과를 가만히 돌아볼 때 하루 중 외부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 중 90%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고 한다. 따라서 실내 공간이 사람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은 상당히 높다.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건물의 실내 환경에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쁜 실내 환경은 실내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건강과 기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족의 건강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공기질(Indoor Air Quality)이 좋은 실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내 공기질을 높이려면 건강한 건축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의 빛을 집안 깊숙이까지 끌어들여 실내를 항상 밝게 유지하며, 오염된 실내 공기를 기계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환기 시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 중에 아토피와 같은 피부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그 집을 떠나고 싶은 심정일거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서 나무집이라도 짓고 살다 보면 상황이 나아지겠지. 이런 막연한 희망을 갖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내가 사는 집의 실내 환경이 좋지 못하면 생각만큼의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행복의 건축>>에서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며 장소, 즉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좋은 집은 사람도 달라지게 하는 마술과도 같은 힘이 있다. 흔히 집은 ‘사는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표현된다. 나와 가족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집이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담을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굳이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내가 집을 짓게 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보기 바란다.

집에 있을 때 나와 가족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보라. 집은 사는 사람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닮는다. 나와 비슷한 성격, 말투, 행동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대게는 편안함을 느낀다. 집이 나와 닮아 있다면 최소한 낯설게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를 닮은 집을 만들려면 나의 생각이 그 속에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는 내 모습을 그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커피와 책을 좋아하고, 음악에 심취해 있으며, 낯선 곳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 이런 식으로 가족의 모습도 하나씩 그려가다 보면, 결국 나와 가족을 닮은 집이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집은 나와 가족에게 평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행복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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