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맨위로

<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라

삶의 가치를 만족하는 집을 지으려면 나와 가족에게 맞는 집이어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 이것만은 꼭 집에 적...

등록일 2020년05월24일 09시3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건축가 최재철의 건축 칼럼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7.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집짓기를 결정했다면 오히려 즐겁게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이다.”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라

“집을 짓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물음에 누군가가 “아무 걱정 말고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해 드릴 테니까요.”라고 답했을 때, 그 사람의 말에 귀가 솔깃한 건축주는 솔직히 집을 지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마음이야 편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맡겨서 결과가 잘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모든 결과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 집인데 그 집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알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내가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많은 비용을 써가며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시공사에게 공사를 맡기는 거 아니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내가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음에도 내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까지 그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건축설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건축가라지만 땅만 가지고는 설계가 불가능하다. 그 땅에 집을 짓고 살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를 건축가에게 전달해줄 사람은 바로 집을 지으려는 건축주다. 같은 땅이라도 그 땅에 집을 지을 사람이 다르다면 집도 다르게 설계되어야 한다. 삶의 이야기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아파트 평면구조는 과감하게 잊어버리라고 강조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아파트 평면은 나와 가족의 삶의 이야기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굳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더라도 불만은 없다. 주어진 공간에 내 삶을 맞춰 살면 되니까 그냥 살게 된다. 옆집, 앞집, 윗집, 아랫집에 사는 사람들도 똑 같은 공간에서 사니까 큰 불평 없이 살게 된다. 하자가 생겼더라도 관리실 전화 한 통이면 시공사에서 다 처리해주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일이 없다.

 

아파트 설계도면에는 내 삶의 이야기기가 단 한 가지도 적용되지 않았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중도금 지불에 대한 계획만 세워 놓으면 그만이다. 입주 날짜에 맞춰 몸만 들어가면 되니까 걱정이 없다.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이 설계에서 입주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아파트에 여전히 마음이 끌리지 않는가? 이럴 때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내가 왜 집을 지으려는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삶을 구현해 줄 집을 짓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생각과 고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고민이 깊을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고민을 토대로 지어진 집의 가치는 아파트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어떤 집을 꿈꾸고 있는가? 나와 내 가족이 어떤 생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가? 아파트와 다르게 계획된 집에서 산다고 아파트에서의 삶과 어떤 큰 차이가 있을까? 아파트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질문들이다. 집을 짓는 가장 큰 이유는 입주해서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기대하고 집을 짓고 입주해 살아가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꽤 많다. 그토록 꿈꾸어왔던 집이었는데 왜 사람들은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했을까.

 

제주도에 오래전 이주해서 살고 있는 지인에게 어떻게 하면 제주도에 잘 정착해서 살 수 있는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 이주해온 사람은 3년 동안 적응하지 못하면 다시 떠나는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3년을 채우는 사람들은 10년이고 20년이고 잘 정착해서 살지요.” 익숙한 아파트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롭게 정착해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10년은 늙을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집을 지었는데 얼마 안 되어 다시 익숙한 환경을 찾아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사실 나도 집을 짓고 입주한지 1년도 되기 전에 단독주택 생활을 포기하고 아파트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 나와는 정반대로 아내는 처음부터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맘 편하게 뛰어 노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설득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을 접고 아파트로 다시 이사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했었으니 그 얘기를 들은 아내로서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때는 이것저것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정말 집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편하게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내 심정은 그냥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다. 10년 전부터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에 사는 꿈을 가지고 있던 내가 왜 1년도 안되어 꿈을 포기하려고 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꿈만 꾸고 있었지, 왜 지으려고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설계를 잘하는 건축가나 나보다 시공에 대해 경험이 많은 시공사에게 일을 맡기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필자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업계에서 20년간 일을 하고 있지만, 지인에게 설계를 맡겼고 시공도 맡겼다. 빨리 지어서 입주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의 의견도 반영하지 않고 내 의견도 제시하지 못했다. 계약한 지 한 달쯤 지나서 친구 건축가가 제안한 계획안을 대충 살펴보고 그냥 수용하고 말았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고 빨리 설계하고 빨리 시공 끝내고 빨리 입주하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 보니 다른 것들을 둘러보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사 날짜에 쫓기다보니 아직 마무리가 덜된 집에 들어가야 했고 자잘한 하자문제가 발생해서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파트 생활할 때는 생각하지도 경험하지 못했던 자질구레한 일들이 생기다보니 짜증이 났다. 아내와 딸아이의 눈치까지 보게 되면서 집이 그냥 싫어졌다. 단점들만 보이기 시작하니까 정작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단독주택의 장점들은 아예 느낄 겨를도 없었다.

 

집을 짓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그 곳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의견뿐만 아니라 함께 살게 될 가족과 충분히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족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라이프스타일은 너무나 다를 수 있다. 가족들과 공통적으로 누려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집의 존재에 대한 의미’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집을 짓는데 이렇게까지 철학적인 고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일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보고 실패를 되풀이 하는 일’이 시행착오다. 실행과 실패를 되풀이하면 시간이나 돈도 많이 투입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경험에 비하면 이 정도 투자는 감수할 만하다. 집짓기를 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시행착오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보고 바쁘게 뛰어 다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짓기는 평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투자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가진 것 모두를 집짓기에 투입한다. 집짓기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그야말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마치 되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짓기는 한 번 실패하면 그 경험을 가지고 다시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후회 없이 내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다른 사람들이 집을 지으면서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내가 교훈으로 삼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저런 일이 설마 나한테 벌어질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좋은 집’의 시작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보다 싸게 짓는 것이 ‘좋은 집’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집짓기를 시작하면 돈, 시간,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나와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 그러나 제 3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집짓기는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의 싸움이다. 미국 심장 전문의 로버트 엘리어트는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하게 삶을 사는 법>>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말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상황을 즐기라는 의미다. 집짓기에서 꼭 필요한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집짓기를 결정했다면 오히려 즐겁게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이다. 나와 가족의 삶의 가치를 고민하고 집이 주는 존재 의미를 고민하는 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나와 가족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답을 찾는 일.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할 일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와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이처럼 삶의 가치를 만족하는 집을 지으려면 나와 가족에게 맞는 집이어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 이것만은 꼭 집에 적용했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은 아내의 말이 맞았었네.”라며 후회하게 될 일들이 많아진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이자 건축가이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