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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3.

집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면 아파트 평면은 잊어버려라

등록일 2020년04월24일 09시2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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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재철의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3.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면 아파트 평면은 잊어버려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의견을 모으며 그것들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심지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을 확률이 높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생활방식은 아파트에 맞춰져왔다. 그러니 그들만큼 아파트 구조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도 없다. 아파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대게는 평면구조가 심플하다. 성냥각과 같은 6면체의 박스 안에서 거의 비슷한 평면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를 선택하는 기준도 단순할 수밖에 없다. 방이 몇 개 필요한지 발코니를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인지 몇 층에 위치하고 있는지 정도만 고려하면 선택이 가능하다. 이 정도 요건만 만족스러워도 매입을 쉽게 결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파트가 표준화된 평면구조를 사용하다보니 방이 몇 개짜리인지 방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만 들어도 몇 평형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는 아파트 면적(평)은 80~90m²(24~28평형) 내외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8평형이면 ‘방3개, 화장실 2개는 만들 수 있구나’라는 식의 계산법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다. 면적당 방 개수를 산정하는 틀에 박힌 생각은 집을 짓고자 할 때는 정작 예비건축주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평면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파트 평면구조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방3개, 화장실 2개짜리 아파트 평면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라. 아마 생각보다 쉽게 전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바로 앞으로 현관문이 보인다. 아니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현관문이 있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두 세대가 붙어 있기 때문에 현관문이 나란히 있든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나와서 오른쪽 집을 살펴보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가족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맞은편에는 남향에 발코니가 딸린 작은방이 배치되어 있다. 작은 방을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긴 복도가 있을 테고 복도 왼쪽에 주방과 식당이, 오른쪽으로는 거의 벽 전체가 대형 창문으로된 거실이 있다. 거실의 방향은 물론 남쪽이다. 복도 끝에 가서는 또 다시 왼쪽과 오른쪽에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오른쪽 방은 부부가 머무는 안방이다. 전용 화장실도 있다. 오른쪽 방은 자녀가 있는 경우는 자녀 방으로 아니면 서재 또는 옷 방으로도 사용된다.

 

<아파트 평면도는 리터치 필요>

<방3개, 화장실 2개로 계획된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구 28평형)>

 

어떤가. 지금까지 따라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평면구조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혹은 과거에 살았던 아파트 평면구조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모르긴 몰라도 아파트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이 구조에 상당히 익숙해 있을 것이다. 아파트 건설사 관계자가 “아파트에서 평면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거의 비슷해졌다”며 신문사와 인터뷰한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보편적인 아파트 평면구조로는 마케팅의 한계가 있음을 하소연하고 있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평면을 강조하는 내용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비록 똑같은 평면구조를 가진 아파트라 할지라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각각의 생활패턴이 다르고 가족구성원도 다르다. 무엇보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도 분명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면 살아간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와 가족의 생활패턴을 표준화, 정형화되어 있는 평면구조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뚜렷한 대안이 없으니 그냥 맞춰 사는 거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아파트는 제한된 면적, 흔히 ‘평형’이라고 하는 약속된 면적에 따라 벽을 나눠서 수평적인 공간을 분할한다. 건축법상 좁은 땅과 건물 높이가 제한된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세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따라서 각 세대 벽도 최소 높이로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독주택과 같이 지붕 구조를 이용해 다락방을 만든다던지 지붕의 경사도를 그대로 살려서 높은 실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꼭대기 층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파트에서는 수직적으로 변화를 갖는 공간구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 모든 실은 평평한 천장으로 막혀있어 수직적인 보이드 공간(비어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제약이 있다. 이렇다보니 아파트에서 다양한 공간 구성이 주는 다이내믹(dynamic)한 경험을 누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천편일률적인 공간 배치가 주는 단조롭움

아파트 평면구조는 단순하게 벽을 나누어 실을 구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성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각 층마다 세대를 몇 개로 나누고 가능한 층수를 높게 해야 수익성이 나오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반영하지 않는다. 제한된 벽 높이 때문에 수직적으로도 변화를 주기가 어렵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단순한 벽 나누기로 변화를 주는 방법뿐이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모양이 직사각형의 박스형태다. 그리고 그 박스 내부에 세대가 몇 개로 나뉘는가에 따라 세대 간의 벽이 생긴다. 남향으로 배치가 되어있는 아파트는 동서쪽 벽은 다른 세대와 맞닿아 있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외부에 접하는 부분은 북쪽과 남쪽 벽 2개가 전부다. 벽 4개 중에서 2개가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벽 나누기뿐이다. 요즘에는 채광과 통풍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남향을 바라볼 수 있게 최대한 방을 배치하는-3베이나 4베이(bay) 구조가 많다. 다른 아파트와 차별화된 변화를 주며 분양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건설사들은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4각형의 단순한 평면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공간배치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아파트가 공간적으로는 변화를 주기 어려운 단순한 구조다보니 소위 벽을 치장하는 것으로 단순함을 극복하려는 시도 또한 늘고 있다. 평평한 천장에 일부분을 따내어 우물천장을 시공하는 것도 단순한 수평구조에 수직적인 공간감을 조금이라도 더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새 아파트에 처음으로 입주할 때도 인테리어 공사를 다시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천편일률적인 공간나누기와 보편적인 인테리어 장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비용이 들더라도 마음 편하게 꾸미고 싶어 한다. 아파트 분양가에는 분명 인테리어 비용이 포함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추가비용을 투입해서까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는 입주자들이 의외로 많다. 구조적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맞게 주거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은 입주자들을 보면 아파트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의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파트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방들이 단절되어 있다.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나누어진 공간에서 자신들의 생활패턴을 바꿔서라도 맞춰 살아야 한다. 불편이 수반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애초에 아파트는 모두를 위한 건물로서 모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최적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얘기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느 한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는 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집에 대한 생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모든 사람을 위해 정형화되도록 설계된 아파트 평면이 나와 가족의 삶을 어느 정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 건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까지는 정형화된 아파트 공간에 나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춰 살아왔더라도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이상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나를 옥죄고 있던 아파트 공간에 대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의 틀을 깨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객관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은 고스란히 집에 반영될 확률이 높아진다. 나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집을 짓고 싶다면 기존방식에 메여 있던 생각의 틀을 벗는 연습이 필요하다. ‘생각의 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정관념’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아파트 평면에 맞는 생활방식을 통해 틀에 박혀있던 고정관념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아파트 평면구조에 나와 가족의 삶을 맞추려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집을 계획할 때 우리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이가 두 명이니까 방이 적어도 3개가 필요하고, 화장실이 1개면 불편할 수 있으니 화장실이 하나 더 있어야 해, 그리고 거실은 커다란 소파를 배치해야 하니까 최대한 넓고 크게 해야지'라는 식의 고정관념 말이다. 이렇게 ‘생각의 틀’ 속에 갇혀 있다 보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통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 집짓기를 결단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나와 가족의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그 집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가족은 각각의 구성원마다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는 최소단위의 사회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의견을 모으며 그것들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건축가, ANN건축연구소 소장

필자는 현재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으로 몸담고 있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annews@naver.com>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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