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재철의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2.
왜 집짓기는 여전히 두렵고 어려울까?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나와 내 가족이 그 집에 얼마나 잘 어울릴지에 대해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길을 찾아가야 할 것”
아파트를 사는 것(buying)은 마치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것과도 같다. 사용자가 기호에 맞는 것을 쉽게 고를 수 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맘에 들면 사면된다. 그러니 집을 짓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과정이 단순하고 쉽다.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입주하게 될 아파트와 똑같은 모델하우스를 통해 실제로 살게 될 공간 구조와 인테리어까지 미리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 집을 짓는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다 짓기 전에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집짓기 기간은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까지도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집짓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보면 막상 준공을 마치고 입주할 때는 기쁨을 느낄 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오죽이나 힘들면 ‘집 한번 짓고 나면 십년은 늙는다’라는 옛 속담까지 있을까. ‘전문가에게 모든 걸 맡기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도 어려워하는 일이 집짓기다. 이처럼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전공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다. 일상의 생활패턴도 아파트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할 때도 사람들은 아파트 구조를 선호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생활패턴으로, 다른 생활공간에 사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모든 면에서 아파트와 다른 단독주택에 대한 두려움은 그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활방식에 맞게 편안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꿈꾸고 희망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하나도 빠짐없이 설계에 반영하다보면 애당초 세웠던 예산을 초과하는 일이 다반수다. 설계자나 건설사로부터 가지고 있는 예산보다 건축비용이 초과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눈앞이 깜깜해진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여기서부터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이처럼 예산은 집짓기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예산에 맞추기 위해 버리자니 아쉽고 원하는 것을 다 적용하려니 건축비가 한 없이 올라가는 현실 앞에서 고민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엉켜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잘못 풀다보면 더 꼬이기 쉽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을 하다보면 지치고 이내 쳐다보기도 싫다. 집짓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과 예산이 충돌하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때쯤 되면 모든 것이 귀찮고 신경도 쓰기 싫어진다. 힘도 든다.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이고 뭐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누군가 나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집짓기 목록은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늘어나지 줄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 집을 짓는데 아파트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구조와 인테리어로 마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파트와 달리 집을 지을 때는 가족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결정해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 필요하다. 그 고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어차피 누군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고민이라면 받아들이고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집짓기가 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건축 관련 전공자에게도 집짓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비전공자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속으로만 끙끙거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모르겠으면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편하게 얘기해보자. 정보도 더 찾아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힘들고 어렵다고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건너뛴다면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그 결과로 인해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만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또 어떤 집을 꿈꾸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면 집짓기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질문들은 집을 짓는 과정을 시작해서 목표지점까지 갈 동안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안내해주는 나침반과 같다. 따라서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완성되는 날까지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에 집짓기는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집을 짓고 싶어 하는 건축주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집짓는 기술이나 방법을 먼저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살기의 방식’을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나와 내 가족이 그 집에 얼마나 잘 어울릴지에 대해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ANN
최재철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건축가, ANN건축연구소 소장) 필자는 현재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으로 몸담고 있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문의 02-516-3135, a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