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재철의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가지 이야기’ 01.
집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 집은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집은 거주(dwelling)하는 곳, 즉 ‘사는 곳’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건물을 의미한다. 사는 곳으로서의 집은 거주자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아파트 한 채 분양 받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꿈 목록 1순위였다. 그만큼 분양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률도 치열했다. 분양 받을 아파트가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에 잘 맞을지 실내는 아늑하고 따뜻한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 이유보다는 일단 내가 원하는 평수의 아파트를 손에 넣었다는 게 더 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재테크 수단으로만 보았던 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집은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고파는 집’이 아니라 ‘사는 집’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재테크 수단의 대명사 아파트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사람은 많지 않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아파트 건설 붐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고층의 아파트는 유일한 대안인 것만 같다. 도심의 아파트를 찾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 끝도 없이 오르는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전국적으로 더 많은 아파트가 들어선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의하면 2016년 주택 착공 수는 약 65만동으로 그 중에 50만동이 아파트였다. 이는 지난 5년 평균치에 비해 무려 33% 증가한 수치다. 통계 자료를 통해서 정부는 이미 아파트 세대수가 과잉공급-아파트를 찾는 사람의 수보다 지어지는 수가 더 많은-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마다 아파트가 넘쳐나는 기이한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교수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국은 대단지의 고층 아파트 건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얻기 위해 열광하는 것이 그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저밀도 공동주택 정책과 달리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고층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 목적으로서 아파트,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아파트
“한국에서 아파트는 재화(the products)인 동시에 현대화의 상징이다.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에서 투기의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줄레조 교수의 말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사는 곳으로서의 의미와는 정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즐레조 교수는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이처럼 열광하는 이유를 ‘투기’라고 단정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파트 단지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거 형태다. 수백 수천 명의 개개인이 밀집해서 한 장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생활하는 방식이나 패턴은 다르다. 따라서 주거 공간도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맞게 계획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똑같은 주거패턴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개개인은 그 패턴에 맞춰 살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거주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파트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아파트 건설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나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파트는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주거의 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아파트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아파트는 ‘몸만 들어가도 되는 집’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크다. 그러나 가족구성원마가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집으로서의 사는 집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추기가 쉽지 않다.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대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집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람이 산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 아파트는 사는 사람이 주체가 되지 못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집의 의미를 이 보다 더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예가 또 있을까싶다.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는 예비건축주들이 궁금해 하는 건축비용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아파트를 짓는 비용은 단독주택을 짓는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 대게는 그렇다. 아파트를 구성하는 세대 수가 많다보니 똑같은 공간구조와 인테리어 콘셉트를 가지고 대량 생산해 내듯 양산하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달리 맞춤형 대량 생산이 가능해서 공정별 공사비용을 낮출 수 있다. 단독주택을 지을 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요소는 땅값이다. 반면 아파트의 경우는 모든 세대가 땅에 대한 지분을 나누어 비용을 부담한다. 따라서 땅값에 대한 부담이 단독주택에 비해 월등히 적다. 아파트는 단독주택에 비해 분명히 건축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파트가 팔리는 가격이 단독주택에 비해 정확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단독주택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축비를 들여서 지은 아파트지만 팔리는 가격은 대게 단독주택보다 더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축비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왜 실제 부동산 시장에서는 단독주택의 매매가격보다 훨씬 높게 책정 될까?
아파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맞도록 보편적으로 계획되다보니 사기도 팔기도 쉽다. 수요와 공급이 늘 공존하니까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는 정부의 정책 변경이나 경기침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떨어지는 일도 거의 없다. 사고팔기 쉽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아파트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보다는 재테크로서의 가치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하고 지어라?
집을 짓고자 할 때 예비건축주에게 가장 흔하게 찾아오는 유혹이 하나 있다.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해서 집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집을 지으려는 예비 건축주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내 마음대로 지었다가 나중에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 나만의 개성있는 집짓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나는 아파트 자체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대도시의 고층아파트는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까지 고층아파트를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관리시스템, 택배시스템, 지하주차장에서 세대로 접근이 쉽고, 멋진 단지 조경도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를 꼽으라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되팔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고 다른 아파트를 찾아 이사 가면 그만이다.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는 예비건축주가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한다면 내가 살 집이지만 내가 원하는 요소를 마음대로 적용하지 못한다. 나는 마음에 들어도 앞으로 살 사람이 행여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팔수 없을 테니까. 따라서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로 나와 가족이 꿈에 그리던 집은 실현할 수 없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부동산으로서 얼마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집은 부동산이고 큰 재산이다’라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이런 생각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건축주들의 마음속에도 늘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집은 살고 싶고 살아야하는 거주의 공간이다. 나와 가족의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그야말로 ‘살고 싶은 집’. 이것이 우리들 모두가 꿈꾸고 지향해야 할 집으로서의 가치가 아닐까싶다. 나와 가족의 삶을 담은 집, 마음 편하고, 따뜻한 정서가 묻어나는 집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라. 집은 ‘사는 것(buying)’이 아니라 ‘사는 곳(living)’이다. ANN
최재철_ ANN건축연구소 소장, 건축가
자료_ ANN 최재철, 리더북스
최재철_ 건축가, ANN건축연구소 소장
필자는 현재 ANN건축연구소 대표소장으로 몸담고 있다. 영국 드몽포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에딘버러 네이피어 대학교 건축환경대학원에서 목재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연구장학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영국 목조건축회사(BenfieldATT)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럽의 다양한 주거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귀국하여 2009년부터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하면서 국내 목조건축 시장의 발전을 지원하는 교육 및 고품질의 시공기술을 전수했다. 2010년부터 전국 23곳의 대학교 건축 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조건축 설계 및 시공 워크숍’을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영국, 독일, 호주에서 에너지 주택, 목조주택, 건강주택에 관한 다양한 기술연수 및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에는 목조건축 CM전문 회사/ 제이건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15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목구조 과목을 강의했으며, 한국조형예술원 목조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다.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기술이사, 한국건축가협회 언론홍보위원, 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언론홍보위원, 영국 Thomas Mitchell Homes 디자인 엔지니어, 석사연구원, 영국 Goodwins Timber Frame 수석건축디자이너, 영국 Benfield ATT 수석건축디자이너, ㈜렛츠고월드 [2000. 04 –10] 국내 1호 목조펜션 설계 & CM 등을 역임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국내 최초 목조펜션 하우스 ‘팜스테이’, 런던 근교의 ‘6층 목조공동주택’ 정릉동 ‘쉐어하우스’ 등이 있다. www.a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