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맨위로

느림의 풍경

안정원의 발행인 칼럼_ 건축 및 디자인, 건설경제, 아트, 문화부문을 다양하게 아우르며 새로운 활력을 주는 매체로

등록일 2019년12월04일 11시0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느림의 풍경

 

 


 

 

전통한옥은 일정기간 동안 그곳에 머물러야만 속속들이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하루 내내, 계절 내내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무던히 버티고 서 있는 한옥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가 묻어난다. 땅을 고르고 바람을 받아들이며 몸에 좋은 재료만을 엄선하여 한옥을 만든 이의 정성이 대를 이어 포근히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1930년대 일제치하, 일본인들이 성곽을 허물고 성안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식 주택을 짓기 시작한 것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전주 교동과 풍남동 일대의 한옥촌은 시대를 거슬러 우리에게 전해진 고유의 건축문화유산인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연회를 열었다던 전주 오목대 위에 올라서면 확연히 드러나듯 약 298,260㎡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약 6백여 채의 전통한옥이 빼곡히 늘어져 있는 용마루 풍경은 그 자체가 장관으로 다가온다. 이런 한옥촌이 지난 1977년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 이르러 지금의 전주한옥마을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한옥마을에서는 숙박을 하며 판소리, 춤, 타악 등의 전통문화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전통주, 한지 등의 제조과정의 관람은 물론 전주의 공예품 등을 두루 관람할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살아있는 전통문화체험공간인 셈이다.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의 디자인 워크숍 차원에서 여러 지인들과 한양대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전주의 느린 한옥마을 풍경은 일상 업무에 지치고 힘든 심신을 부드럽게 감싸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잠시간의 일정이었지만 한옥마을에서 하루 동안 머물면서 한옥의 느린 시간 속에 온몸을 맡겨보았기에 더욱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하루를 머물었던 인제고택 학인당은 조선조 성리학자 조광조의 제자이며 청백리인 문경 휴암 백인걸 선생의 10대손 인재 백낙중 선생이 1908년 백미 8천가마의 공사비와 4280명의 공사인원을 투입하여 2천여평의 대지에 완공한 전주한옥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말 전통건축기술을 잘 보여주는 한옥이었기에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느낄 수 있는 한옥의 기와지붕과 처마선, 기둥과 마당, 담장 등 한옥이 전해주는 낮은 풍경은 그 자체가 느림이고 여유인 셈이다. 하늘을 향해 무섭게 솟구쳐 오르는 빌딩 숲으로 둘러싸이고 빠르게 질주하는 차들로 넘쳐나는 우리네 대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기에 한옥마을은 더욱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저 멀리 담장 너머로는 어머니가 정겹게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골목길 어딘가에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서로 뛰어놀던 정겨운 모습들이 보이는 듯하다. 다소 전통문화 관광지로 변해간 탓에 상업시설과 사람들로 채워짐에 따라 한옥 특유의 고요함은 사뭇 덜하였지만, 그래도 한옥들의 빚어내는 특유의 정감과 운치 탓에 나의 한옥마을 사랑앓이는 한동안 지속될 듯 싶다. 비록 업무차 떠난 하룻밤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옥에서의 머무름의 짙은 추억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의 머무름에는 정겨운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즐거움이 배가된다. 양방과 한방,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을 합친 세계통합의학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는 대자인병원의 이병관 원장이 들려주는 맛깔스러운 이야기는 좋은 지혜의 향기로 넘쳐난다. 비록 분야는 다를지라도 학문은 결국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의학 전반을 꽤 뚫고 있고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디자인 워크숍의 분위기를 더욱 정감있게 만들어간다.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질병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치유하며, 병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클리닉을 통해 영혼이 살아 숨 쉬고 감정이 소통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학을 이끌어간다”는 병원 모토는 어찌 보면 우리의 건축과 디자인, 건설 상황에 접목시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말이다.

 

“사고를 미리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공간, 우리의 정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삶의 안식처, 건강한 환경은 물론 사람의 정신까지 치유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시대 많은 건축가와 공간디자이너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인 셈이다. 우리 모두에게 ‘집이 주는 편안한 마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ANN

 

안정원(비비안 안)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겸임교수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세상의 모든 셰프 (2019-12-09 09:35:16)
발전하는 향기 (2019-12-03 1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