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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주거 문화 논단>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8

“아파트,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다”

등록일 2020년05월20일 08시3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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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주거 문화 논단>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8

“아파트,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다”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란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인 MVRDV가 주창한 계획 방법론이다. 앞서 살펴본 외국의 아파트 사례 중에서 보조코 주거단지가 이 방법론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데이터스케이프는 데이터로 만들어지는 랜드스케이프를 뜻하는 것으로, 감각적인 형태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하여 혁신적인 솔루션을 도출한다는 이론이다.

보조코가 데이터스케이프 개념의 결과라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로스케이프(lawscape)’ 개념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흔히 우리나라 아파트를 성냥갑에 비유하곤 한다. 밀도에 대한 요구와 법률적 규제라는 비슷한 한계 속에서, 어째서 보조코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사례로 계속해서 인용되고 우리나라 아파트는 성냥갑으로 비난받는 것일까? 혹시 디자이너가 MVRDV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특별건축계획구역으로 설계된 재개발 아파트지구. ©토문>

 

보조코 역시 밀도에 대한 건축주의 요구와 법률적 요구 사항이라는 한계 안에서 작업했지만, 그 결과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구조로 표현했다. MVRDV는 단순히 데이터의 분석에 그친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지닌 속성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도출하여 거기서 해결점을 찾아 디자인에 반영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 결과를 예술적 직감과 연결시켜 창의적 건축물 디자인의 촉매제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암스테르담의 보조코 ©김재헌>

<암스테르담의 보조코 ©김재헌>

 

사실 디자이너만 도전 의식을 가져서는 획기적인 디자인을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MVRDV의 설립자이자 대표건축가인 비니 마스는 국내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설계 작업 시간의 반 이상을 연구와 자료를 수집하며 보냈다”고 밝혔다. 2010년에 있었던 국내의 모 지구에 대한 아파트 현상설계는 공고가 난지 26일 만에 3,300세대를 디자인할 것을 요구했다. 26일 중에 13일을 연구와 자료 수집에 투자할 수 있는 건축설계 사무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더웨일 집합주택 ©최두호>

<더웨일 집합주택- 암스테르담의 전통적인 주거 형식인 블록형 주택이 태양의 고도에 따라 계획했다. ©최두호>

 

절대적인 시간 부족을 극복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건축주(아파트를 공급하는 주체, 즉 건설업체나 공사)가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또한 그 이전에 공급자는 소비자가 그러한 디자인을 원한다고 판단했을 때, 새로운 디자인은 종이 위의 건축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는 건축주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처럼 차려진 밥상 탓만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필자 역시 아파트 설계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죄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사실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에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건설업체도 새로운 디자인을 요구하지 않았고, 공공기관도 마찬가지였다. 디자이너 역시 이러한 조류에 휩쓸려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한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다시 디자이너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다. ANN

최두호 ㈜토문건축사사무소 대표

 

 

최두호 필자는 1952년생으로 청주고등학교,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을 졸업했다. 건축사와 도시학 박사로서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 근무(1977~1990)했으며, 1990년 9월 15일 ㈜토문건축사사무소를 창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는 건설교통부 중앙건설 심의위원, 서울시공공건축가 총괄계획가,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한국주거학회 부회장, 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참고 문헌> * 최두호, 한기정, 아파트를 새롭게 디자인하라, auri지식총서, 2010 * 최두호, 주거단지 계획 이론의 변천과 계획 요소의 특성연구, 2007 * 김진수, 아파트 브랜드 경험 효과에 관한 연구, 한국지역개발학회 제29권 4호, 2017 * 신한우 외,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요인 비교에 관한 연구, 한국건축시공학회, 제8권1호 * 발레리즐레조, 아파트공화국, * 최두호, 토문건축이 이야기하는 도시 주거지, 제1편 도시 주거 바라보기, 2015 * 손세관, 20세기 집합주택, 열화당, 2016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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